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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당신 누구인가요?

2011. 2. 22 '손홍주 인물사진 과제' 셀프포트레이트 

당신은 어떤 사람이에요?
이 질문에, 21살 영화감독이 꿈인 친구는 칠판에 해삼처럼 보이는 그림을 그려놓고 자신을 설명했고, 사람 좋아 보이는 언니는 'O형으로 보는 분들도 계시고 A형인줄 아는 분도 계시지만 AB형입니다' 라며 혈액형별 특징으로 성격을 내보였다. 가장 인상 깊은 한 분은 짧게 주어진 발표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겠다며 3분짜리 이루마의 피아노 연주곡을 BGM으로 깔고 얘기를 시작, 그간 찍은 사진들 중에 몇 점을 가지고 와 일상과 미래의 포부까지 조곤조곤 설명하셨다.

난? 동문서답처럼 현재 처한 상황을 나열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는데, 최소한 귀가 밝다는 단편적인 특징이라고 알렸어야 했던 건 아닐까 싶단 생각도 든다. 허나 이 쉬워 보이는 질문 앞에 하얗게 질리고 만 건 어쩜 당연한 일이다. 이미 날 안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을 제외하면 결코 나에 대해 말할 자리도 없거니와 매일 드는 혼돈의 감정을 적기 바쁜 내가 완전한 정의로 스스롤 설명한다는 건 진작 불가능한 일이었다.

넌 누구니. 이토록 생소한 질문이 오늘에야 비로소 가슴을 두드린다. 이것은 곧, 당신의 얘기 속에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당신의 얘기 속에 내 미래가 담겼고 더불어 용기도 건졌다. 두루뭉실 상상 속에 그려놓고 못가본 길인데 저 앞에 걷고 있는 당신을 만나자 달리고 싶어진다. 여러 당신의 소리에 꼿꼿했던 고개가 자연히 숙여진다.

페이스북이 십년 전 스쳐 지난 인연을 찾아 줬다. 나조차 잊고 지낸 나의 인연과의 조우에 기분이 묘했다. 드넓은 가상 세계의 인적 관계망이 끝도 없이 펼쳐지는 요즘이지만, 두 눈 맞추고 '나'를 털어놓는 시간을 함께 하자진짜 관계의 출발선에 선 기분이다. 오랫만에 타인이 우물길 내듯 마음 깊이 알고 싶어졌다.

당신, 어떤 사람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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