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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소원이 없다

 

2013. 9.

 

 

놀랄 만큼 휘영청 밝은 달이 팔 뻗음 닿을 듯 가까이에 빛나고 있다. 딱히... 두 손 모아 기도할 거리는 없다. 소원마저 없다니... 쓸쓸한 기분은 몰아내련다. 관점을 디자인 하라는 책도 잃은 마당에 다르게 보자며. 어떤 바람이 없단 건 현재에 대체로 만족한단 뜻도 될 테니까 안타까워 말자며.

 

꼽아보면 가진 게 많다. 출근하는 5일은 각기 다른 스타일로 계절별 코디가 가능한데다, 수시로 질린 옷을 물려주는 언니가 둘이나 된다. 첫째 유치원비가 살짝 밀려있지만, 곧 월급날이니 괜찮다. 이래저래 지출이 많아 카드 값이 걱정이지만, 그게 걱정이 아닌 적은 없으니... 대수롭지 않다. 누런 코가 질질 흐르긴 해도 아들들이 환절기 감기를 은근하게 이겨내고 있고 뭣보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논다. 여러모로 나보다 나은 남편이 우리 집 한가운데 단단히 뿌리박고 섰다. 새로 산 책을 수북이 쌓아 놔 가을의 문턱에서 의욕도 오른다. 시댁 식구들에게 대접한 약밥과 소갈비찜 모두 맛있게 드시니 요리하는 기쁨이 이런 거구나 새삼 즐겁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내 볼에 뽀뽀할 때의 뒤섞이는 고운 숨결을, 가족과 와인 잔을 부딪쳐 가며 도란도란 속삭인 포근한 시간을 가졌다. 그냥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은 하루를 말이다. 굳이 달에게 기도하지 않아도, 나는 나대로 괜찮다고 효리언니처럼 의연하게 산다. 아직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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