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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er

뉴욕 여행, 우리 집 할렘 104 street 1st Ave.

 2014. 6. New York

 

뉴욕 여행 경비 300만 원을 아낄 수 있다!  

 

뉴욕행 역시 급하게 결정됐다. 이스트할렘의 건물 폭파 사고가 나기 하루 전날,

"그래, 까짓 가자. 다 사람 사는 곳인데 얼마나 위험하겠어!" 

호기롭게 그곳의 한 스튜디오에 예약금을 보냈다.

 

함께 간 슈테른 일행은 보름 남짓, 후발 주자인 난 일주일 남짓 머물게 될 곳이었다. 맨하튼 중심부에서 떨어진 이곳에 머문다면 5명 총 숙박비의 300만원 가까이 아낄 수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할렘이라면 수년 간 봐온 할리우드 영화에서처럼 허리춤에 총 한 자루씩 찬 흑인들의 무법 천국이 아닌가. 우리가 가는 곳이 이스트할렘이라고 불린다지만 결국 할렘이 아닌가.

 

한번 키워진 걱정은 잦아들 기세 없이 빵빵하게 부풀었다. 나름 오랜 기간 뉴욕에 머문 지인들의 의견을 모아도 '이스트 할렘은 스페니쉬계가 모여 사는 곳이니 그닥 위험하지 않을 거야.' 정도의 정보가 전부였다. 한 달을 살았건 1년을 살았건 그 누구도 이스트 할렘에 잠시라도 들른 이는 없었다.

 

여행 시작도 전에 고민만으로 지칠 순 없었다. 우린 가장 단순한 기준 '가격' 하나만을 고려해 선택했다.

 

 

할렘에 산다 

 

104 street 1st Ave. 뉴욕의 주소 체계는 워낙 깔끔해 번지수만으로 대강의 위치가 파악된다. 104 street 이라면 우범 지역으로 분류되는 북쪽에 속하지만, 맨하튼의 심장 센트럴파크의 경계와 맞물려 공원 문화를 향유할 수 있다. 그 덕분인지 가족 단위의 뉴요커가 자주 눈에 띄었고, 흑인 뿐 아니라 아시아계, 스페니쉬계 등 다양한 인종과 마주쳤다. 밤거리는 위험하게 느껴질 만큼 소란스러웠지만 아침은 여느 6월과 같이 싱그러웠다.

 

젊은 엄마들은 담배를 태우며 유모차를 끈다. 이게 뉴욕 스타일인지 104번가 스타일인지 그녀의 일상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들 대부분은 지하철역으로 향했고 이후 벌어진 광경이 지금까지 내 가슴 속 할렘의 메인 컷이 되었다.  

 

낙후하기로 소문난 뉴욕의 지하철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인데, 에스컬레이터는커녕 좁은 계단 입구에는 지독한 하수구 냄새가 진동을 한다. 뿐만 아니라, 훤한 대낮에도 역 주변을 서성이는 산만한 흑인 청년들은 겉모습만으로 위협적이라 눈을 마주 칠 수가 없다. 잰 걸음으로 달음질치다 슬쩍 뒤돌아보니 그들은 유모차를 들어 올리거나 내렸다. 잠시 눈을 의심하고 다시 봐도 변한 건 없었다. 어둠이 내린 저녁에도 비슷한 광경이 곧잘 펼쳐졌다.

 

 

볼수록 희한한 풍경이었다. 미니스커트에 하이힐로 한껏 멋을 부린 중년 여성도, 작은 체구의 나약해 뵈는 초로의 남성도 유모차가 눈에 띄기만 하면 나르느라 바빴다. 도움을 받고도 대단히 고맙다는 흔한 인사말이 또렷이 들리지 않았다. 일상 속 배려가 그만큼 자연스럽다는 반증으로 읽혔다.

 

사흘 쯤 지나자 건물 형태가 눈에 들어왔고, 학교와 놀이터 주변 아이들도 나의 아이와 다름없이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할렘의 밤공기와 은은히 풍기는 도시 특유의 향기가 익숙해 졌다. 나도 모르게 쌓아 올린 내 안 높은 벽 한쪽을 허물자 더 넓은 세상과 사람을 만났다. 

 

9년전 뉴욕 여행기를 다시 읽는 밤 

 

역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오는 길에 풍기는 KFC 치킨 냄새를 거절하지 못하고 치킨 한 봉지를 사들고 집으로 들어가던 날 밤의 우리가 그립다. 이스트 할렘에서 밤새 떠들던 언니 오빠들을 가만히 눈 맞추고 웃어 줄걸 어린 나의 여림이 그립다. 묘하게 풍긴 이국의 도시 향이 친근해질 무렵, 여행은 끝이 났고 돌아와 A Week In Nework 제목의 사진책을 한 권 만들고서 아직까지, 다시 가보지 못한 뉴욕. 

 

여행은, 이 순간이 최고의 순간임을 꿰뚫어 볼 줄 아는 자의 것이다. 

 

 

뉴욕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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