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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우리는 방학

 2015. 여름

 

 

이제야 날짜를 꼽아본다. 이 주쯤 됐을까.

그리움엔 몸이 먼저 반응한다. 이 주. 기다림의 한계치. 두 밤만 지나면 아들들이 집으로 돌아온다. 혼자라 귀했을 일요일날에 기꺼이 청소를 감행했다. 서걱거리는 발바닥의 느낌도 싫었지만 무엇보다 아들들에게 뽀송한 잠자리를 마련해 주고픈 엄마의 마음으로. 기꺼이.

 

설거지 한 번, 청소기 두 번, 빨래는 네 번 돌렸다. 그 중 두 번이 이불 커버였다. 그 외 각종 서랍 옷장 주방 곳곳 야무지게 진행 된 대청소였다. 폭염이었다. 우리집 거실엔 에어컨이 없다. 땀을 비오듯흘렸다란 진부한 표현을 굳이 쓰고 싶지 않지만 이보다 더 정확할 순 없다. 그러니 기꺼운 마음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문득 이 '기꺼운' 상태가 얼마나 값진가에 대해서 생각했다. 삶의 질, 행복 따위는 기꺼운 데에서 출발하는 게 아닐까 하고.

 

큰 아들이 다니는 대안 초교엔 중요한 규칙이 하나 있는데 바로 미디어 시청 금지다. 학부모 대상의 공식 비공식 모임마다 빠지지 않고 강조하는 대목이다. 동의하지 않을 땐 입학이 어렵다고도 했다. 이만하면 정말로 중요한 일인 거다. 다만, 왜 강조하는지에 대해선 아직 납득할만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

 

애들 끼리도 갑론을박이다. '영화는 된다더라. 영화도 안된다. 한달에 한 번은 된다. 절대 안된다.... '라는 식의.

 

지나치면 화를 부른다고 했다. 난 가능한 한 지키려는 노력과 지나치지 않으려는 의지간의 중간 지점을 찾는 편이다. 엄마가 휘두를 재량의 범위를 남겨둔달까. 이런 내게도 사실 첫 여름 방학을 어떻게 해야 될지 남감했다. 할머니 댁에선 아침 저녁으로 줄기차게 티비에 노출될 터. 딱히 대안도 없으니 결국 보내고 말았지만. 덕분에 이 주 남짓 내게도 방학이 왔다.

 

서른 중반에 도로 맞은 여름 방학은 어땠나. 괜찮았지 아마? 우선 신랑과 잦은 저녁을 먹었다. 그날 그날 입맛을 고려해 골똘해질만큼 신중하게 메뉴를 결정했다. 우리 동네에서 나름 손꼽히는 아구찜 샤브샤브 순대국 집을 찾았다손맛 좋은 엄마를 둔 신랑의 미감을 충족시킨 적 없는 나여서 둘만의 이 주 동안 통크게 그의 의견에 이견을 달지 않았다. 그와 산 지 만 7년. 대충 그가 맛있어 하 내 입맛에도 맞다. 까만 밤 외출도 콜. 애들과 함께라면 곯아떨어졌을 시간에도 영화도 보고 카페도 갔다.

 

, 제주도 여행도 감행했다. 달달하지만 달달 떨렸던 연애시절과 달리 8년차 부부의 시크한 아우라를 풍기며 무심히 흩어졌다 만났다. 익숙하고 편한 관계를 평가 절하한 편이었는데 재발견을 한 셈이다. '살다 보면 언젠가 부부의 또 다른 사랑이 찾아 올겁니다' 라던 오대표의 주례사가 떠올랐다. 당시 그의 말에 반신반의 했었는데...

 

큰 애 마지막 방학 1주일을 남겨둔 시점에 아들들이 돌아온다. 직장맘에게 1주일의 휴가는 불가능한 일. 자구책으로 아들 친구의 부모들에게 릴레이 아마를 제안했는데 동참하는 분위기가 제법 있다. 엄마 또는 아빠가 너댓명의 아이들을 하루씩 맡아 돌보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제법 긴 시간이지만 8살 꼬마들과 함께하기, 예상보다 괜찮다. 적당히 의견 조율이 필요한 시점에 가이드 역할만 해주면 끼리끼리 알아서 잘 한다. 행여 티격태격 말싸움 아니 멱살잡이를 해도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란 걸 이미 공동 육아라는 공동체 안에서 아이를 키운 지난 일년 간 배운 터다. 가까이 육아의 길잡이가 없는 내겐 특히 공동 육아를 만난 건 인생의 행운이다.

 

최대한 자주, 지금 내가 누리는 '공동 육아' '대안 교육' '공동체의 삶'의 소소한 이야기, 느낌적인 느낌들을 쓰고 싶다. 좋은 건 나눠야 하니까. 매일 방문하는 누군지 모를 대 여섯 명의 사람들에게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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