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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굿 바이 ‘브란젤리나’

 

 

결국 이렇게 됐다.
둘의 결별을 예상한 나조차 적지 않은 충격이다. 지인의 이별처럼 가깝게 아프다. 아마 이별의 경험이 떠올라서겠지. 송곳처럼 뾰족한 게 파고드는 그 아픔을 아직 기억하니까.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수 년 동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커플로 이름을 올린 그들의 선택이다. 아마 앞으로 수 년 간 더러운 스캔들로 시끄러울 거란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 그들이 내린 결정이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이 결정이 얼마나 ‘진심’인지 알 수 있다. 

 

 

안젤리나 졸리는 오래 관심을 둔 배우다. 방황과 스캔들로 얼룩진 그녀의 젊은 나날이 전복되는 과정을 (팬으로) 지켜봤다. 자살시도, 약물 중독과 같은 이야기들이 나올 만큼, 그녀 또한 ‘미친 시절’이라고 인정한 자신의 어두운 과거 이후 천천히 다른 삶을, 옳은 삶을 산다. 일탈로 바닥을 경험한 자의 지독한 성찰이 삶을 가치 있는 방향으로 이끄는 것 같아서, 난 그녀를 동경하고 또 존경한다.

브래드 피트야 누구나 그렇겠지만 <가을의 전설>부터 아니 <델마와 루이스>의 단역 시절부터 나의 ‘사랑’이다. 나의 롤모델과 첫사랑의 결합은 그래서, 흥미롭고 때론 곤란했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 둘이 꿈에 나왔다. 브래드 피트는 내가 좋다고 고백했는데 난 졸리와의 의리로 갈등했다. 이후로도 둘은 꾸준히 내 꿈에 등장했다. 졸리는 아이가 입던 작아진 옷을 챙겨 줬고 육아의 여러 조언을 들려줬다. 피트는 늘 나와 둘만 있길 원했고 난 그 사실을 졸리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애썼다. 이런 우스꽝스러운 꿈을 꾸느라 매일 피곤했는데, 잠에서 깨면 늘 혼란스러웠다. ‘아, 브래드 피트랑 데이트 할걸 그랬나.’

그러고 보면 난 수시로 둘이 생각났고 또는 보고 싶어서 유튜브의 인터뷰 영상 등을 챙겨봤었다. 졸리의 말투를 흉내 내거나 졸리가 유일하게 감정이 흔들리는, 엄마에 관한 기억을 더듬으며 울먹일 땐 같이 울었다. 늘 가깝게 보고 들은 탓에 나의 무의식의 세계인 꿈에 그토록 자주 등장했는지도 모르겠다. 꿈속에선 무심하게 마주쳐도 ‘안녕’ 인사하는 친구 사이가 됐으니까.

2년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결혼 문화에 대해, 아니 결혼 제도가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지를 따박따박 따지길 좋아했는데, 이젠 이 익숙함이 편하다. (망했다.) 다른 사랑의 기대도 한 풀 꺾였다. 이젠 정신도 없고 힘도 없다. 자주 깜빡깜빡 하고 숙취가 쉬이 회복되지도 않는다. 표정마다 새겨지는 이마의 주름 같은 게 신경 쓰일 뿐이다. 이젠 그저 아침 사과 한 접시 정도의 배려를 사랑이려니 하고 남은 30년을 살아야지 한다. 단념이다.

브란젤리나의 이별 소식은 아프지만, 이들 앞날의 다른 사랑이든 그 무엇이든 담뿍 지지해 주고 싶다. 이왕이면 다른 사랑으로 아픔을 극복한다면, 더 기뻐해 줄 수 있겠다. 이렇게 가벼운 감상으로밖에 둘을 지지해 미안하지만, 우린 사실 너무 먼 사이니까. 애정 가득한 팬으로 할 일은 이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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