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일

2017.02.01 20:20Diary

 

머리는 천천히 마르고 있었다. 손끝에 느껴지는 분명한 감각으로 알 수 있었다. 대략 얼마간의 공을 들여 드라이기를 멈추지 않는 다면 분명했다. 머리카락은 두피 끝까지 건강하게 마를 것이다.

거울 앞에서와는 달랐다. 거울 앞에 서면 화가 불쑥 올랐다. 젖은 머리가 인내심이 마를 때까지 마르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마르는 속도가 눈에 띄지 않았다. 한가득 젖어 뭉친 머리카락이 한올한올 떨어져 찰랑일 때까지 한 손으론 털고 다른 손으론 드라이기를 휘둘리기 바빴다. 아침 시간은 항상 빠듯하고, 한가할 때마저 머리를 말리는 일이란  귀찮은 일이니까. 

오늘따라, 기특하게도, 이른 아침 유일하게 깬 나의 분주한 소음으로 식구들의 단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책상이 놓인 작은 방 구석으로 드라이기를 가져와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거울을 마주 보지 않아 조금 어색한가 싶을 때 곧 아늑하고 편안했다.  눈의 감각은 잠시 쉬고, 손이 재빠르게 감각했다. 점점 또렷하게 따뜻한 마름의 속도가 전해졌다.

보이지 않는 일이 이토록 편안했나. 갑자기 여러 생각들이 쏟아졌다.

나란 사람. 보이는 일에게 보이지 않는 일보다 더 가치를 둔다. 입는 것 바르는 것 먹는 것과 사는 것들 보이기 위해 공들이는 것들이다. 천천하게 당연한 순서대로 적당한 시간의 대가로 젖은 머리가 마르듯이, 천천하게 당연한 순서대로 더하고 빼고 노력하는 적당한 시간의 결과까지 견디는 일에 서툴다. 당장 보이진 않지만 언젠가 느껴지도록 순간마다 마음을 다하는 경험이 적다. 눈으로 확인하고, 판단하고, 즉각 설명하는 일에 후하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믿고 싶다. 보지 않아도 믿지 않아도 그저 해내고 싶다. 지나면 언젠가 어떤 결과가 정답이라며 날 찾을 텐데. 머리 말리다 말고 이게 뭔 잡념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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