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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집 짓는 일 #1 건축가와 건축주

instagram @australian architecture

 

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이따 뵐게요.
...
고맙습니다.
...

벌써 너무 많은 인사말이 씹혔다.

이런 일방적인 관계는 짝사랑도 드믄 내게 첫 경험이나 마찬가지라서 어떻게 다뤄야 할지 당황스럽다. 회사 동료라거나 거래처 누구라거나 옆집 아줌마라면 애써 무시하고 적당히 거리 두며 살다보면 잊혀질 터.

억 단위의 프로젝트, 그 중 반은 빚인 가슴이 답답한 일생 일대의 결정에 그 누구보다 중요한 키를 쥔 사람. 남은 인생의 흥망을 손에 쥔 자, 나의 건축가 얘기다. 

바보같은 솔 메이트가 되리란 꿈도 거품이 되었다. 나의 가장 큰 문제가 '기대감' 이란 걸 잘 알지만, 기대가 이만큼 흩어져 파편으로 사라진 경우는.... 이 얼마나 불운인가.

더 이상 감정의 관계를 하지 않기로 다짐한 태도다. 더 이상 감정의 소모로 다치고 싶지 않다는 방어기제다. 모르는 바 아니다. 여리고 약한 분이리라. 

건축이 타인을 읽는 일(승효상이 한 말)이란 걸 간과한 듯 그녀는 타인을 읽는 일에 서툴다. 그저 자신을 구제하고 보호하기 바쁘다. 예술의 범주 또는 학문의 범주의 건축을 다루고 있는 지도 모른다. 삶과 사람이 중심인 건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은 듯하다. 건축주의 이견에 날카롭게 대응하는 것만 봐도... 참으로 건축가 답지 않지 않은가.

차분하고 반듯한 첫 느낌에 반해 조금씩 친해지고 싶다는 허튼 꿈으로 관계를 맺은 나의 안목에 실망하는 요즘. 집 짓는 일이 이만큼 고되고 괴로운 적이 또 있었나. 

사이가 벌어진 건 어떤 계기 때문인데 서로 그럴만한 입장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풀면 될텐데 이후 모든 교감의 여지를 닫았다. 집에 대해 상상하고 궁금할 때 성가시지 않을 만큼 (고심 끝에) 연락해 묻고 듣고 의지한 나에겐 안타까운 일.

시간이 지나도 애틋한 관계를 가만히 보면 진심으로 깊은 관계를 위해 욕심내고 노력했던 경험이 있는 경우다. 신랑과는 말할 것도 없고 20년 지기 친구, 지난 회사의 동료, 아들 친구 엄마 등등 몇 안되지만 애정하고 의지하는 아끼는 관계는 진심으로 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한 이후 얻어지는 결과다.

그 진심은 시간만이 안다. 시간만이 보상한다.  진심과 진심이 닿기 위해 끈질기게 인내하고 아파하고 돌아보고 포용한 걸 시간은 안다.  포기하고 단념하고 타인을 그저 타인으로 둔다면 '너와 나'는 '우리'가 될 수 없다.

오늘도, 여지없이 인사말 조차 씹히고 기분이 잡치고 말았다. 오늘도, 여지없이 '우리'를 기대한 걸까.

이대로 마음을 닫는 다면
남보다 못한 관계로 남을텐데 나는 그것이 힘들텐데...

익숙한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은 나의 확장을 이뤄보라는 일종의 시험일까. 아픈 경험으로 적당히 포기하고 기대를 버리란 교훈일까.  

이제는 조금 편안하게 내 방식대로 자신있게 과감하고 싶다. 따뜻하고 아름답게 제안하고 설득하고 포용하고 전하고 이해시키되 뜻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고 싶다. 그녀로 인한 전전긍긍은 나와도, 환영해도 모자랄 집짓기와도 어울리지 않는다.

 

서두르지 말고 아파하지 말고 기대하지 말되, 따뜻하게 가자. 오늘은 건축가와의 마지막 미팅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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