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그리고 아들

2017.05.07 12:03Diary

 

 

미세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눈에 보이는 양만해도 엄청난 먼지의 날, 엄마 아빠와의 나들이를 강행했다. 두 분은 미세먼지 따위 상관없이 멋지게 차려 입고 이미 약속 시간을 20분 늦은 막내딸을 간절히 기다렸으나 애써 태연한 척 하는 듯 보였다. 바쁘다는 핑계로 안부조차도 미루고 지내는 일이 익숙한데 달뜬 두 분의 모습을 보니 죄송했다.

 

언제나처럼 햇살 쏟아지는 야외 테이블에 자리 잡고 낮맥과 바비큐 안주를 챙겨 왔다. 언니랑은 자주 즐기는 코스인데 엄마 아빠와는 처음이다. 아빠는 낮맥을 시원하게 두 병 원샷. 술 못하는 엄마도 홀짝 홀짝 즐기시더라. 엄마는 헤어지는 한 밤의 시간까지 낮의 맥주 맛이 일품이었다며 기억해 얘기하셨다. 엄마의 기쁨이 나의 일상이구나. 이렇게 쉬운 걸 난 왜 이제야 함께 할 생각을 하느냐 말이다.

 

학창 시절 모범생 라인만 쭉 밟은 엄마가 어쩌다 이런 날라리 딸을 낳았는지. 딸이란 게 엄마 마음도 못 읽어 주고 무심하게 지만 노는지... 커지는 죄스런 마음에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 우리의 시간은 한없을 것 같지만 얼마 남지 않았을 텐데. 꼭 이런 날에만 마음이 급해져 부지런히 챙겨 드리겠다고 각오를 다지는지.

 

문득, 우리 한젤이 생각이 났다. 나는 엄마이지만, 나(만)의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나의 시간은 즐거움과 만족에 맞춰 돌아간다. 사사로운 감정을 읽는 탁월한 능력으로 마음 어느 한 구석에도 불편한 기운이 남지 않도록 대체로, 되도록, 행동하고 경험하는 편이다.

 

한젤이도 곧 이 사실을 알게 되겠지. '우리 엄마는 좀 다른 것 같아' 싶겠지. 더 자란 한젤이가 우리 엄마는 하고 싶은 건 알아서 잘 하고 자주 웃고 별 걱정 없이 사는 그런 엄마쯤으로 이해하고 기억해 주길 바란다. 엄마 생각하면 아무 걱정도 미안함도 없이 그저 상쾌하길 바란다. 오늘도 별 일 없이 친구랑 웃고 지낼 엄마를 떠올려 주길 바란다. 너의 결정에 반기를 들지 않는 단순하고 명쾌한 엄마로 기억해 주길 바란다.

 

아니 사실, 내가 그렇게 되고 싶은 것 같다. '좀 다른 엄마' 말이다. 물론 사실은 다를 수 있다. 우리 엄마는 철이 없다며. 없어도 너무 없다며.

 

 

2017.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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