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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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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둘과 떠난 여행 아들 둘과 여행 떠나기 전, 이토록 다른 두 강아지들 데리고 여행 다녀왔다. 셋의 첫 여행이라 어떤 마음들인지 궁금해 재차 묻는데 루다는 기대돼 기대돼 수영장과 호텔방!이라고 감정과 구체적 요소까지 재잘거리는 반면에 한젤이는 기대 안되는데, 라며 시크하다. 그럼 왜 가는 거야? 포기하지 않고 질문하는 내게 어제 마트 같이 못 같으니까 (이번엔 같이 가주는 거야) 같은 묘한 뉘앙스의 말을 이어 주길래 고마웠다. 말수 적은 아들의 말소리가 고맙고 오락 가능한 기기도 스스로 내려 놓고 그저그럴 엄마와의 여행에 임하는 저 포용적이고 심플한 마음가짐이 더 고마웠다. 문득 이 뿌듯함은 뭐지 묻다가, 문득, 이토록 다른 두 녀석을 낳은 나는 세상에 뭐 이토록 멋진 일을 일으켰나 싶어서 깜짝 놀랐다. 얘네들을 내가 낳..
뉴욕 ​ 이들이 눈 앞을 지난 찰나의 순간을 기억한다. 현실감이 무너졌던 기억. 무심히 횡단보도 앞에서 대기하는데 쏟아지는 느슨한 햇살 아래로 지나는 사람들 이라기 보다는 압도적인 풍경. 거짓말이라고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빛의 속도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이 한 장의 사진은’ 나의 뉴욕’이 되었다. . 다양한 삶의 방식이 묻어나는 도시는 많지만 뉴욕은 좀 달랐다. 과감하고 지유분망하면서 때론 노골적이었다. 타임스퀘어와 가까워 질수록 ‘너의 돈을 탐하겠다’는 뉴욕의 의지는 강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앞서가는 시도와 그들만의 조용한 취향이, 오래되고 낡아 우아한 것들이 공존하는 모습에 매 순간 영감을 받았다. 걷고 또 걸어도 지치지 않았다. 보고 또 보느라 매 끼니도 걸렀다. 뉴욕에서의 열흘..
에세이라는 막막함 에세이, 수필의 다른 말. 수필,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인생이나 자연 또는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쓴 산문 형식의 글. 오래오래 전부터 꾸준히 여행 에세이를 챙겨 읽은 독자로서 어떤 에세이를 좋은 에세이라 부르냐고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 앞에서 막막하다. 이제껏 여행하는 것에 아깜이 없었고, 여행할 때면 어김없이 한 손엔 여행 에세이를 챙긴 독자로 어려운 질문도 아닐텐데... 이토록 막막하다니. 내가 좋아하는 에세이를 떠올려 본다. 여행지에서의 말랑말랑한 감성만을 풀어 놓은 책에는 사실 별 흥미가 없다. 여행지에 대한 배경 지식과 문화, 현재의 도시 풍경과 로컬들의 사는 모습을 꿰뚫는 통찰력을 가졌을 때야 만족한다. 스스로의 감상 또한 일차원 적인 느낌에 한하기보다, 내면 깊숙이..
책으로 대신하는 '유럽산책' 나와는 평생 연이 닿지 않을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전화박스 사용법부터 저 식품의 정체가 무엇인지까지 도무지 친숙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이국적인 곳에 가고 싶었다. 낯선 곳에서 어리둥절해하는가 하면 매료되기도 하고, 실타래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근사한 대륙의 다양성을 경험하고 싶었다. 기차를 타고 한 시간만 가면 주민들의 말도, 음식도, 업무 시간대도 다르고, 주민들은 한 시간 전에 만났던 사람들과 너무나 다른 삶을 살면서도 묘하게도 비슷한 곳. 나는 그런 근사한 대륙의 여행자가 되고 싶었다. 책으로나마 여행 중인 요즘이다. 머뭇거리지 말고 떠나자..떠나자... '빌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산책' 중에. 2006.9. Venezia
자유로운 영혼, 불편한 진실 <사람 풍경> 한 살 반부터 외가에서 살다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어 엄마가 나를 데려가기 위해 외가에 왔을 때의 일이라고 했다. 막 일곱 살이 된 나는 엄마가 온다는 사실을 안 순간 신발도 신지 않고 단숨에 집 밖으로 달려 나가더라고 했다. 그 길로 3백미터쯤 떨어진 작은 외가 집으로 달려가 곧바로 그 집 안방으로 뛰어 들어갔다고 했다. (...) 이불 밑으로까지 몸을 숨기더라고 했다. 작은 외할머니가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잡으러 왔다.”고 대답했다고 했다. 김형경 내게도 또렷한 유년의 삽화가 하나 있다. 하굣길, 언제나처럼 단짝 친구 나영이네 집으로 향했다. 어느 때처럼 나영이 엄마는 나영이를 안고 만지고 극진히 살폈다. 대충 가방을 내려놓고 집 앞 놀이터로 나와 한참을 놀았고, 나영이는 이제 집에..
1년의 휴가 꿈이 아니길, 셰익스피어 배케이션 라마라는 동물은 내게 1957년 뉴욕의 타임 스퀘어에 나타났다가 도시의 무언가에 화들짝 놀란 나머지 황급히 택시를 타고 제 고향 안데스의 고산지대로 귀향한 후 도시에 나타나지 않는 신비롭고 비현실적인 생명체 같은 것이었다. 인지 모라스 라는 매그넘 사진작가 중 가장 낭만적이고 비현실적인 사진을 찍었던 여성 작가가 있는데, 그녀의 사진을 통해 라마라는 동물에 대해 처음 알게 된 사람들은 나처럼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터이다. 김경의 . 언제쯤 나도 그녀처럼 여유롭고 호기롭게 미지의 땅 곳곳을 밟을 수 있을까. 언제쯤 나도 그녀처럼 다시는 서울로 돌아오지 않으리란 뜨거운 각오를(다시 돌아오게 되더라도) 가슴 깊이 품을수 있을까. 패션잡지 기자로, 또 칼럼리스트로 잘 나가던 커리어우먼은 여행지 선택..
산티아고 가는 길 "나는 길의 감식가야. 평생 길을 맛보면서 살 수 있어. 이 길은 영원히 끝나지 않아. 어디든지 갈 수 있어. 영화 'My own private Idaho'에서 리버 피닉스가 읊조린 말이다. 영화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요절한 천재 배우 리버 피닉스 때문이었을까. 길 감식가라는 말은 준과 지니의 청춘을 지배했던 말이다.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오래 전부터, 아주 오래 전부터 두 여자는 이미 길에 중독되어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책장에 꼽혀 있던 이 책을 손에 집은 건 정말이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저 나른한 오후를 때워볼 심산 이었다. 낮잠을 좀 자고 싶었는데 쉽게 잠들지 못했기에 어쩌면 읽다가 지쳐 단잠에 빠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유독 자주 눈에 띄었지만 표지도 제목도 마음에 안 들어..
<비포 선라이즈> 제시처럼 사는 법 여행을 꿈꾸거나 준비중인 이들에게 로망이 되어버린 영화 현실과 닮았기 때문일까. 다르기 때문일까. 문득 드는 생각 하나. 왜 나는 기다리기만 했을까. 매력적인 제안을 ‘받’는 셀린느(줄리델피)를 꿈꿀 때, 반대로 제안을 ‘하’는 제시가 되어보면 어떨까. 단 하룻밤의 시간이 꿈처럼 흩어질 줄 알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읽을 줄 알고 솔직하게 전달할 줄 아는 용기를 지닌 제시. 나는 제시가 되고 싶다. 어디선가 읽고 고민했던 물음.. ’죽음이 눈앞에 있다면 사랑’받’은 기억을 떠올릴까, 사랑’한’기억을 떠올릴까.’ 놓치거나 기다리지 말고 다가가는 것. 함께 걷자고 보고싶다고 사랑한다고 먼저 말하는 것. 심장이 두근거릴 때 그것을 모른채 하기보다 지속시킬 줄 아는 것이 제시의 방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