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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다시 태어난 기분

2010. 11. 강화도


우리 나이로는 서른하나가 된 해에 나. 뷰파인더로 세상을 보는 역할을 맡아 다시 태어났다. 그러고 보면, 나의 과거가 얼마나 '서른'을 갈망했었나. 이토록 찬란한 인연을 예감했다는 듯. 

거울만 들여다볼 줄 알던 허울의 나로부터 벗어나 타인과 대화하기 시작해줘서.  흩어진 폐지를 제자리로 옮겨놓아 줘 고맙다.  아  먼저, 아끼던 보물을 선뜻 건넨 친구에게. 마냥 신나라한 내게 서운한 기색 하나 없이 네 영국의 생활을, 인도의 추억을 담아 준 D80을 선뜻 보내준 친구야 고맙다. 너는 나의 INVESTOR. 언제나 최고로 챙기마. 눈에 보이는 모든 것과의 관계 맺음이 곧 사진이란 걸 가만히 깨닫게 해준 선생님께. 사진과 함께여도 만약 당신이 없었다면 그건 앙꼬 없는 찐빵이지요. 당신에게 보고 들은 마음가짐을 가장 기본의 자세로 깔아두곤, 이젠 혼자 세 걸음 네 걸음 걸어가려고 해요. 훗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의 사진에 대한 이야길 하게 될 날이 만약 온다면 첫 번째로 꺼낼 이야기가 바로 당신과의 인연일 겁니다.

겨우 일년을 꾸역꾸역 해놓고 달뜨려니 부끄럽지만, 사실 내가 무언가를 꾸준히 해 본 것은 별로 없다. 12월 9일. 홍대 공간415에서 '천천히 깊고 느리게' 전시회가 열린다. 나의 첫 데뷔. 라고 하긴 뭐하고 어쩌다 그렇게 됐다고 하기엔 좀 아쉬운, 낯모르는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선보이는 사진전을 연다. 물론 달팽이 골방 두 걸음 반의 열 한 분의 선후배님들과 함께다. 올해의 마지막쯤에는 작은 전시회를, 안되면 우리 집 거실에서라도 직접 찍은 사진 몇 점을 벽에 걸어 감상해보고 싶었다. 작은 소망이었는데 이토록 좋은 기회로 덥석 현실이 됐다. 이쯤에서, 1월 조리개와 셔터스피드를 조작하며 노출의 세계에 발 들인 어리둥절함을, 5월 오래 눈여겨 뵌 할머니와 만남과 설렘을, 9월 춤추듯 누볐던 재활용센터에서의 활기를 다시금 들춰보고 싶어진다.

물리도록 곱씹어 보아도 잊지 못할 갖가지 감정들로 지난 봄 여름 가을이 다채롭게 수 놓인다. 마치 공정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듯, 모르던 세계에 정직하게 발 담근 기분도 든다. 눈에 들어와 마음을 끌고 관계를 맺어 사진으로 보이는 일련의 과정이 괴로울수록 행복했고 종종 뿌듯했다. 얼마 전 사진워크샵을 통해 만나 뵌 이시우 선생님은, 철조망의 녹슨 흔적만을 손바닥보다도 작은 똑딱이 카메라로 촬영하셨다. 채움보다 비워냄의, 강렬한 이미지보다 내용의 중요함을 바로 배울 수 있었다. 이젠, 어여쁜 이미지에 금세 반했다 떠나지 않을 자신도 생겼다. 내면이 채워질수록 사진도 깊어진다니, 더 공부하고 싶어진다. 내년 전부를 꽉 채워 진행해보고 싶은 프로젝트도 머릿속 구상을 끝냈다. 마음가짐이 묵직하다.

여전히 '나'에게서 탈출하지 못한 채 '나'로부터의 탈출구를 찾고 있지만, 조바심은 없다. 되리라 믿고 있다. 겨우 부족한 네 점의 사진을 내보일 준비를 하며 이야기가 거창했나 싶지만, 사진과 함께 한 올해를 정리 마감하는 지금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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