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ary

(164)
초록댄서 나는 은연중에 숱하게 본 영화 속의 삶을 내 삶의 리듬과 혼동하며 살았다. 연애가 막 불붙기 시작하는 순간처럼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 영화 평론가 김영진의 책 에 나오는 이 구절은 17년 된 내 블로그 소개글이다. 만들 때 적어 놓고 지금까지 그대로 두었다. 영화 속의 삶을 내 삶의 리듬과 혼동하며 살았다. 연애가 막 불붙기 시작하는 순간을 쫓다가 불충분해 지곤 했다. 어쩐지 뭉근한 일상을 반복하는 요즘 문득 별처럼 빛나는 순간을 알아챌 때, 비 내린 다음 하늘이 수줍게 맑아올 때 같은. 아무 의미가 없을 텐데 굳이 인생의 의미 같다고 생각하면서 작게 기뻐서 혼자 웃었다. 나의 초록댄서스튜디오 🔖 마리메꼬 오마주백 🔖 꽃들의 작은 지갑, pink
만년필로 글쓰기, 몰입의 기쁨 오늘은 종일 한 자리에 앉아 읽고 썼다. 파이롯트와 컴포지션스튜디오가 함께하는 만년필 글쓰기 클럽을 하고 있다. 이번 주제가 “어린 시절의 엉뚱한 일”이었다. 어릴 때 바이올린을 배웠다로 시작하는 글에서 피아니스트가 꿈인 엄마가 등장했다. 자신의 못 이룬 꿈을 딸에게 투영하고 기대했을 엄마 마음이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적혔다. 엄마는 늘 엄마 그대로인데 나는 상황과 감정마다 엄마를 피곤해도 하고 그리워도 하는 딸이었구나. 외롭고 아프고 복잡했을 젊은 엄마는 일기를 쓰고 기도를 했는데, 지금의 내가 그 엄마를 똑같이 닮았구나. 내가 엄마를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결국 내 미래의 모습이겠구나. 엄마가 사랑스러우면 사랑스러운 내가, 엄마가 지혜롭다면 지혜로운 내가 되겠구나. 엄마가 나구나. 엄마 사랑이 고파서 ..
나의 첫 브랜드가 실패한 이유 <프로세스 이코노미> 프로세스 이코노미를 일고 알게 된 두 가지 나의 첫 브랜드가 빠르게 힘을 잃은 이유를 대라면 열 가지도 넘게 부를 수 있지만. 이 책 를 읽고 알게 된 건 두 가지. 하나, 가진 자원보다 더 크게 모아 시작한 것. 둘, 허용 가능한 실패 범위를 뾰족하게 세우지 않은 것. 가장 후회하는 건 성공을 의심하지 않고 서두른 것. 결국, 나의 무모함과 실력 없음으로 축약해 스스로를 비난하고 자포자기하길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어쩐지 엉망으로 헝클어지는 일에 도전적인 사람은 아니더라. "지금 가진 자원에서부터 시작하라" p 95 내 두 번째 브랜드 초록댄서 스튜디오는 “지금 가진 것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로 다시 시작했다. 뭘 알고 선택한 건 아니고 비우면서 쫓기다 보니 지. 금. 할. 수. 있. 는...
2024년 44살 되고 27살 산다 (-17) 올해 44살이 된다. 작년 나라에서 발표한 중위(중간위치) 나이가 45살이란다. 30년 전에는 28살이었으니, 그 사이 평균 수명이 17년 늘어난 셈이다. 이 기준으로 나는 올해 27살. 마음의 소란과 작별하기로 나에게는 나이도 계절도 날씨도 미세먼지도 코로나도 일상을 흔드는 요소가 되지는 않는다.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것에게 무심하게 구는 건 잘하는 편이니. 대신 마음의 소란한 말들을 따르는 오랜 습관이 있다. 마음에게 복종적인 삶이었달까. 올해는 정든 소란과 작별하기로. 27살 나는, 첫 직장을 떠나 영화사로 일자리를 옮겼는데 인생 마지막이 될 중차대한 결정이라면서 호들갑을 떨던 기억이다. 서른도 전에 마지막을 운운했다니 우습지만, 당시만 해도 20대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그런 지난 양..
빛과 빚 울 아빠가 여든 살이 된다. 엄빠 집에 들러 모시고 약속 장소로 향하기로 한 날이다. 엄빠는 이미 코트까지 걸치고 섰는데 약속 2시간 30분 전이다. 엄마, 지금 출발하면 일러. 조금 천천히 나서자. 그래 알았어. 아침은 먹었니? 순식간에 된장국과 두 종류의 폭 익은 김치와 콩자반과 구운 김과 양념장이 차려진다. 뭐 줄 게 없네. 엄마 충분해. 진짜 맛있어. 엄빠는 거의 뛰어다니면서 반찬을 꺼내고 생강차를 타주고 따뜻한 물을 내주고 …. 아, 시간을 거스를 수 있구나. 과거 그대로를 경험하는 신비 체험 같다. 이만큼 고맙게 맛있게 먹지는 못했지만. 아빠 내 마음에 아빠는 60살 정도 같아. 근데 벌써 80이 되셨어요. 그러게 말이다. 아빠 10대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 70대 80대 중에 언..
23년 12월 매해 일기 23. 12월 31일. #1. 마흔 셋, 죽고 싶고 살고 싶은 들숨과 날숨이 교차하듯이 죽자 하다 살자 했다. 원래 좀 뻥카가 있는 편이라 말이 연극적이고 원하는 상을 태도로도 연출하는 나지만, 스스럼없고 자유한 척 하다가도 곧잘 죽음을 떠올렸다. 이 말인즉, 아무리 서툴고 엉망인 날 미워하지 않았던 내가 처음으로 안락한 자리를 내주지 않고 나와 대치한 상태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 우울을 관통하다가 어쩌면 필요한 일이 아닐까 알게 되었고. 죽음을 꺼내보는 인간은 미운 나를 마주하는 고통체, 연약한 상태일텐데 싶어 그의 실재 죽음이 멀지 않게 아파서 자꾸 눈물이 난다. #2. 배움의 시작, 예슬과 고은을 만나다. 예슬은 시카고에서 박사 과정을 공부하다가 코로나로 얼결에 한국으로 돌아온 나의 바이올린 선..
슬아가 슬아 되다, 끝내주는 인생 일간 이슬아를 구독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슬아 인스타그램에서 행보를 지켜보던 시절이었다. 어? 얘 뭐야? 하면서 들여다보게 됐었다. 키치 한 무드로 눈길을 사로잡았던 그였다. 촌스러워서 획기적이었다. 난 획기적인 걸 좋아하니까. 획기적 (劃期的) 어떤 과정이나 분야에서 전혀 새로운 시기를 열어 놓을 만큼 뚜렷이 구분되는 것. 슬아를 한 해 두 해 지켜보다가 특유의 성적 매력을 흘리는 묘한 끼가 읽혀서 살짝 피곤했다. 매일의 글을 보내고 때로 정중하게 마감이 늦어졌음을 알리거나 그 밖의 양해를 구하는 글들이 똑 부러지고 예의를 다한 태도였지만 마음 쓰지 말아 달라는 당부 같아서 마음 두길 멈추었다. 다시 한 해 두 해가 흘렀다. 이젠 내 주변에 슬아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최근 그의 경향신문 칼럼을 읽고 ..
엄마의 손편지 #1. 기대라는 사랑 꿈을 펼쳐라 일과 사랑을 잘 꾸려라 건강을 보살펴라 능력있는 여성으로 살아가라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라 다 잘될거야 . 엄마의 손편지를 받고 까매졌다. 기대와 바람의 말들의 나열 사랑인지 알면서도 내 마음에 들여 놓을 자리가 없다. 기대의 말을 사랑으로 듣고 자랐다. 응원가 같은 긍정의 말들이지만 기대는 불충분한 상태를 거울로 비춘다는 걸 이미 알게 된, 마흔의 나다. 기대의 말로 사랑을 받은 사람은 자기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기까지 더디다. 배운대로 기대의 말로 사랑을 하느라 늘 불충분한 것에게 먹이를 줬다. 지금이 나의 꿈이고 이미 이뤘고 이대로 괜찮고 그대로 충분하다는 ... 사랑 ... 이 글은 엄마를 원망하는 글이 아니다. 나란 아이가 자라 이 부족한 사랑을 사는 구나 발견한 결정적 순간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