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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닭의 노래

2007.12. 상하이


올해의 시작에 '소박한 밥상' 을 집은 건 탁월한 선택인 듯싶다. 작년 이맘때 육식을 멀리해보자는 각오가 말짱 도루묵이 되고도 모자라 아예 깜깜하게 잊고 있었는데, 덕분에 다시 한 번 채식주의의 의지를 다잡아 보게 됐다. 사실 어떤 글에 감흥 했다고, 글처럼 실천하게 되는 건 아니니까.  아마 나의 채식주의 프로젝트도 마찬가지일테고... 다만, 실낱같은 희망을 봤다면, 바로 어제.

일주일에 내내 먹으래도 좋을 만큼 난 닭요리를, 특히 닭볶음탕과 삼계탕을 좋아한다. 어제는 몸이 으슬으슬 춥고 기운도 없길래 삼계탕용 닭을 사다가 집에서 푹 고아 먹었다. 문제는 그 닭이 너무 작았을 뿐 아니라, 불그스름한 것이 꼭 아기 같아 보였다. 모른 체 하곤 고놈을 팔팔 끓여 넓은 냄비에 담아 다리를 뚝 뜯고 날개도 찢고 가슴살도 발라먹는데 푹 익은 갈비뼈가 힘없이 와사삭 아작 나고 말았다. 언제나 헤쳐 먹고 발라먹던 닭 뼈인데 이상하게도 비위가 상했다. 혹시 책의 영향일까. 또 한 번 뒤적뒤적 찾아 읽어봤다.

"닭, 소를 비롯한 가축은 보호받으며 살지만 자연스럽지 못한 존재로 산다. 살고 죽는 것이 완전히 인간의 손에 달린 채 사는 것이다. 그들의 삶을 간섭하고, 특히 그들의 죽음에 참여하는 우리는 윤리적인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 도살자는 동물을 도끼로 찍어 넘어뜨리고, 갈고리에 걸어 움직이는 벨트로 마지막 도축 과정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보낸다. 완전히 숨이 끊어지기도 전에 목을 자르고, 비틀고, 가죽을 벗기고 살을 자른다. 내가 그걸 아는 것은 25년 전, 그 끔찍한 시카고의 도살장에 두 번 가봤기 때문이다. (...) 우리는 살해자 정도가 아니다. 우리는 노예 감독관이며 착취자이다. 우리는 음식 강도다. 우리는 벌에게서 꿀을, 닭에게서 계란을 강탈한다. 젖소에게서 우유를 뺏는다. 야생 소는 송아지에게 15개월간 젖을 먹인다. 그런데 우리는 집에서 키우는 젖소가 송아지를 낳으면 새끼를 분리시키고, 새끼에게 먹여야 할 젖을 빼앗아 먹는다. 야생에서 대개의 조류는 1년에 4-5개의 알을 낳는다. 양계장에서 우리는 수백 개의 알을 낳게 채근한다."

'소박한 밥상' 에서 헬렌 니어링은 인간의 육식이 불필요하고, 비합리적이며, 해부학적으로 불건전하고, 건강하지 못하며, 비위생적이고, 비경제적이며, 미학적이지 않고, 무자비하며, 비윤리적이라는 사실을 조목조목 따져놓았다. 그리고 헨리 데이비스 소로우의 글을 인용해 설득을 더했다.

"나는 고기를 거의 먹지 않는다. 그것은 지금까지 알게 된 고기의 단점 때문이 아니라, 내 상상력에 고기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고기를 혐오하는 것은 경험의 효과가 아니라 본능인 것이다. 고매하고 시적인 재능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는 데 열심인 사람이라면, 특히 고기를 멀리할 것임을 나는 믿는다."

시무식 겸 점심 회식으로 베트남 쌀국수를 먹었다. 언제나처럼 안심과 차돌박이가 쌀국수의 깊은 국물 맛을 더해 주었다. 삼계탕처럼의 거북함은 없었지만, 고기를 먹는다는 인식은 예전보다 또렷했다. 몇 점은 골라 먹고 몇 점은 남겼다. 저녁엔 뭘 먹을까. 고기 없이도 푸짐한 한 끼 식사를 궁리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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