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Film Scene

사적 다큐멘터리에 뜨거운 공감 <할매꽃>



다큐멘터리 영화 <할매꽃> 앞에는 굉.장.한. 이라는 수식어가 붙어도 될 것만 같다. 그저 자신의 가족사를 듣고자 가족들의 인터뷰를 진행할 뿐인데 그 안에 한국의 슬픈 현대사가 완전하게 자리잡고 있으니 말이다. 작은 시골 마을이 상대 중대 풍동으로 쪼개져 양반 상민으로 갈리고 그것도 모자라 좌익 우익으로 나뉘어 서로 물고 뜯고 할켰던 갓 지난 역사가 너무나 생생하니 말이다.

박완서도 이렇게 말했지 않은가 "피난민만으로도 곤고한 신세인데 북으로 가는 피난민과 남으로 가는 피난민은 원칙적으로 정반대의 사상을 가진 걸로 돼 있으니 문제였다."라고.  그 시절의 상황을 가족들의 육성을 통해 사실감 있게 전하는 <할매꽃>은 그러나 결코 감상에 젖거나 감동을 조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철저하게 그것들을 토해낸다. 감독은 장면들을 수도 없이 쳐내는 작업이 살을 도려내는 것 같은 아픔이었다고 회상하지만 그 덕분에 '영화의 최대 미덕은 흔들리지 않는 감독의 객관적 태도'라는 호평을 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 탄생된 <할매꽃>은 2007년 부산국제영화제 최우수다큐멘터리 상인 운파상을, 2007년 <은하해방전선>과 함께 올해의 독립영화상을 수상했고, 베를린국제영화제 바르샤바 국제영화제 등 해외 영화제에 연이어 초청됐다.

공식 블로그에 올라온 감독의 세 번째 제작 일지에 "정권이 바뀌면 또 어떻게 될 지 모르니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시기상조" 라고 영화 제작을 말린 이모할머니의 노파심이 흘려 들리지 않는 요즘이다. 보이진 않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연좌제는 국가가 휘두르는 폭력 속에 숨어 있다. 더구나 표현의 자유.가 무색하게도 인터넷 논객은 범죄자로 낙인 찍혀 옥살이를 하고, 그저 생존권을 보장해달라는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는 웃기지도 않는 끔찍한 코메디가  벌어지고 있다. <할매꽃>이, 이제는 말할 수 있겠지 싶어 꺼내 놓은 내 가족의 얘기가 적지 않은 대중의 공감을 얻는 건 이런 시국이 불편하고 부당하다는 걸 우리 모두가 인지하기 때문이 아닐까.  처절했던 지난 세월의 흔적이 한 가족안에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걸 알았을 때 심장이 멈칫, 하고 마는 것 <할매꽃>을 봐야하는 이유다.  


<할매꽃>은, 
20년 가까이 지속적으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온 한국 독립다큐멘터리의 늘 푸른 정신이자 공동체인 ‘푸른영상’ 의 작품이다. <송환><엄마…>등 명품 다큐멘터리 제작 푸른영상은 1991년 결성되어 지금까지 20여 편의 장편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통일, 노동, 빈민, 환경, 여성 등 다양한 사회문제와 이웃들의 삶을 기록해 온 다큐멘터리 공동체이다. 머리나 기술보다는 ‘가슴과 발’로 세상을 만나며 역사와 사회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기에 주력해온 푸른영상의 유의미한 행보는 2000년대에 접어들어 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나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2004년 개봉하여 당시 독립영화 최고의 관객수를 기록한 <송환>의 김동원 감독이 푸른영상의 대표로 공동체를 이끄는 가운데 2005년에는 류미례 감독의 <엄마…>가 개봉해 딸을 넘어 여성의 눈으로 바라 본 어머니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로 관객들에게 큰 울림을 선사했다. 그리고 2009년 3월 19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문정현 감독의 <할매꽃>은 우연히 알게 된 감독 자신의 가족사를 통해 현대사로 확장되고 있는 상처와 아픔을 끌어 안는 영화로 지금 이 시대의 고민을 관통하는 작품이다. 뒤이어 정부를 상대로 정직하게 마을을 지키고자 했던 대추리 농민들의 투쟁을 담은 김준호 감독의 <길> 또한 5월 개봉을 앞두고 있어 진실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하는 푸른영상의 뜨거운 행보는 계속될 전망이다. <할매꽃>  3월 19일에 개봉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