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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시작의 날 2012 3 5



한젤이가 유치원에 입학한다. 우리 때와 비교해 꽤 이르게 시작하는 공동체 생활이라 내 맘도 편치 않은데... 아니나 다를까 유치원 첫 등원 날이 되자 내내 의연했던 한젤에게도 심난한 기색이 엿보인다. 모른 척 하고 등 떠밀어 보낼까 하다가 "한젤이가 오늘 큰 유치원 처음 가는 날이라 두근두근 떨리는구나." 했더니 금세 울 것 같은 얼굴이 돼 품안을 파고 들어온다. “엄마도 처음으로 뭘 할 땐 긴장되고 떨려. 하지만 시작하면 다음번은 쉬워지거든. 해보는 거야. 잘 할 수 있을 거야." 위로가 전해질까 반신반의하며 건넨 한마디인데 다행히 아이 얼굴이 환해진다. 되레 비가 내려 촉촉해진 땅을 얼른 밟아보고 싶다며 문 밖을 나서길 재촉한다.  

함께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는 동네 형, 누나도 있으니 든든한지 밖에서도 연신 함박웃음이다. 내 마음도 한시름 놓았다. 안 간다고 울고불고 도망치는 난리부르스는 벌어지지 않을 징조다. 엄마 손에서 떨어지기를 세상에서 가장 싫어한 6살적 나는, 길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울다 못해 통곡하는 괴로운 아침을 오래 겼었다. 그에 비하면 한젤이의 등원 길은 행복해 보인다.

꽤 쌀쌀한 3월 초의 날씨인데,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는데, 아이의 옷이 너무 얇은 건 아니냐는 어머니의 말씀에 걱정이 차오른다. 발 시리진 않을까... 실내화 겸용 덧신도 준비하지 못했는데... 언 발은 녹는데 시간이 꽤 걸릴 텐데... 독하다는 봄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인데.... 걱정이 꼬리물기를 하는데, 다행이 노란 버스가 도착한다. 한껏 들뜬 한젤이는 앞장 선 형, 누나가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버스 계단 턱을 오르는 시간도 길게 느껴지는지 몸을 움찔움찔한다. 그 모습이 참 기특하다 싶어 짠해지는데, 안전하게 착석한 아이가 손을 마구 흔들어 보인다. 순간 느닷없이 눈물이 목에 걸린다. 안쓰럽고 미안하고 대견하고 고마운 복잡한 마음이 실타래처럼 엉켜 마음 한가운데를 콕 찌른다. 걸어서 10분이면 도착하는 동네 유치원에 보내는 길인걸 눈물까지 흘리는 건 좀 주책이지 싶으면서도 흔들리는 가슴이 쉬이 진정되지 않는다.

앞으로 떠나보낼 그 많은 일들을 어떻게 겪는담. 태어나 3년 하고 5개월이 지난 아들이 유치원 버스에 올라 타 두 손을 흔드는 그 대견한 모습은 오래도록 마음 안에 머물겠지. 애틋함이 깊어지는 엄마로 성장 중인 낯선 내 모습도 언젠간 익숙해 지겠지.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지는 날 가슴도 벅찬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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