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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y

오만한 자신감, 구스타브 쿠르베


1819년 프랑스 오르낭에서 태어난 구스타브 쿠르베 Gustave courbet

화가가 되기 위해 파리로 가기로 결심한 구스타브 쿠르베는 자신의 고향 오르낭에서 여러 점의 그림을 남겼다. 오르낭은 그에게 큰 무대에 오르기 전 들른 연습장 같은 곳이었다. 특히 <오르낭의 매장> 속의 배경은 오르낭 모습 그대를 옮겨놓았고, 그림에 등장하는 50여 명의 사람들은 모두 그곳에 실존했던 인물들이었다. 그렇게 그는 리얼리즘을 자처한 화가였다.

내가 구스타브 쿠르베를 기억하는 것은 바로 그의 자화상 때문이다. 너무나도 당당하고 심지어 거만해 보이는 그의 자화상 <파이프를 물고 있는 남자>를 보고 나는 그의 오묘한 표정에 매료되고 말았다. 턱을 살짝 치켜 들고 시선은 은근히 아래쪽을 응시하고 있는 그의 표정에서 오만함에 가까운 자신감이 느껴져 마음에 들었다.


실제로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그의 자신감은 사람들에게 화제였고,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었다. 1870년 그가 <폭풍우 후의 에트르타 절벽>으로 인생 최고의 절정기를 맞으며 대중적인 인기를 한 몸에 받던 때,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종 도뇌르마저 거부할 정도로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런 그에게 고난이 닥친것은 1871년. 그는 파리 코뮌(1871년 3월 28일부터 5월 28일 사이에 파리 시민과 노동자들의 봉기에 의해서 수립된 혁명적 자치정부)에서 예술가 협회 대표를 맡는가 하면 루브르 미술관 책임자로도 임명된다. 그러나 파리 코뮌은 두 달 만에 끝나고, 참가했던 수만은 사람들이 처형되고 감옥에 투옥된다. 파리 코뮌 실패 후 재판에 넘겨진 쿠르베에게 6개월의 금고선언과 전 재산 몰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그 뒤 그는 스위스로 망명한다. (참고서적: 프랑스 오브 유어에)


그가 감옥에 투옥됐을 당시 그린 <송어>는 이전에 그의 화풍에서 느껴졌던 당당함과 자심감을 찾아볼 수가 없다.

시간의 흐름과 별개로 예술가의 격한 삶과 시대를 그들이 남긴 작품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요, 감동이다. 그것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결과물로 만들어 세상에 내놓고 홀연히 떠나는 예술가들이 부럽고 또한 존경스러운 이유기도 하다. 그의 화풍이 변화하는 과정을 찬찬히 살피보니 모든 인간은 성숙해 지기까지 고난에 고난을 거듭한다는 사실이 새삼 받아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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