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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er/잠자는 공간

보통날의 여행 #1. 제주도 서귀포 북카페와 맛집과 숙소, '알맞은 시간'에 '괜찮은 부엌'에서

 
내 생의 가장 부자인 나날이다. 시간을 이끄는 자의 위엄을 산다. 회사 생활을 정리하고 내 브랜드를 런칭하고 최고 중에 최고로 꼽는 건 바로 이 ‘시간’이다. 돈의 속성 김승호 작가도 자기 사업을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스스로 시간을 통제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어쩌면 유일한 직업일 수 있다고 얘기했다. 
 
그 곳이 어디든,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니 평일, 보통날에 훌쩍 제주로 날았다. 티겟이 저렴했고 런칭한 하이그루 브랜드의 첫 프로모션의 결과지를 받아 안았으니 웅얼거리는 마음에게 귀 기울이고 싶었고 기발한 뇌는 무용한 시간 안에서 문득, 출현하는 법이니까. 무엇보다 딱히 제주까지 갈 필요가 없었으나 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이유는 너무나 결정적이었다. 
 

 
생에 첫 예산을 설정하고 여행을 떠났다. 놀랍지 않은가. 사십 평생 신카에 의지한 삶을 끝낸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게. 원하는 것 앞에 무력할까 걱정했는데, 결과적으로 오감이 완전히 열려 맨 몸으로 바다의 파도에 몸을 싣고 젖은 모래가 분방한 나와 하나가 되도록 허락한 모험 가득한 반전의 여행이 되었다. 40만원 예산 안에서 잘 먹고 잘 자고 바다 곁에 누웠으니 충분하다.  
 

귤과 제주맥주와 책 한권과 태양과 바다의 파도로 충분했다. 비행기 가격이 왕복 4만원인 보통날, 평일이었다. @하이그루꽃파우치

 


 
 
난 늘 현지인처럼 사는 일상을 여행하길 원한다. 관광지를 이리 저리 찾지 않는 편이고 근거리를 주로 산책하길 좋아한다. 숙소를 고르는데 공들이고, 선택한 숙소 주변의 탐색이 여행의 시작이 된다. 
 

별하비스테이

제주도 서귀포 남원읍 에어비앤비, 숙소 

 

 
제주도 서귀포 남원읍에 위치한 숙소. 중문 바다와  20분 거리. 바다 여행지의 에어비앤비 중에 가성비가 녹여진 것 같다 싶으면 바다와 조금 떨어진 곳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도 역시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각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압도적이다. 사진으로는 조악한 조화들로 어색한 공간일까봐 걱정했는데 이분들 대체 뭐하는 분들인고 싶게 식물들이 전부 살았다. 침실 곁의 욕조와 쾌적함 이상으로 넓은 욕실도 인상적이었다. 제주란 도시의 쉼의 공간에서 씻는 행복을 누리도록 배려로 설계된 게 아닌가 싶어서, 디테일을 따지고 관철시킨 호스트의 마음이 엿보였다.  
 

 
현무암으로 쌓은 아일랜드 식탁이 아름다운 부엌에도 살림들이 미니멀하지만 꼼꼼하게 갖춰져 있었다. 냉장고에 스티커가 어렵게 떼인 자국이 보이는 걸 보니 수고롭게 기꺼이 뗀 것이 확실하다. 나도 그 에너지 등급 표시 스티커가 주는 연두와 주황색에게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이라서, 이 디테일의 취향이 마음에 쏙 들었다. 
 
에어비앤비에서는 늘 사람이 보이지 않나. 사람이 공들이는 지점이 읽히면 반갑지 않나. 나는 그런 편이다. 공간에게서 사람이 읽히면 여행이 푸근하다. 공간에게서 인색함이 읽히면 여행이 팍팍하다. 나에겐 공간과 여행이 거의 같은 말이나 다름 없어서 공간을 경험하러 여행을 가는게 아닌가 싶을 때도 많다. 그런 면에서 이번 제주 여행의 이 숙소, 별하비스테이를 만난 건 완전한 행운. 
 

괜찮은 부엌

제주도 서귀포 '아직은' 현지인 맛집 

 

 
숙소에 공을 들인다면, 먹는 것에는 그닥 관심이 없다. 귤 하나 맥주 하나 가지고 바다 앞에 가면 된다. 요즘은 좋아하던 술도 한 잔이면 충분해서 흥에 겨운 예산 초과의 상황을 마주하지 않을 수 있었다. 분위기 좋은 펍을 찾는 시간을 무용한 사색의 시간으로 대체할 수 있었다.   
 

 
나의 여행은 그래서, 숙소 주변의 현지인 맛집을 찾는 편이다. 대기표를 받아야 하는 스타 맛집을 찾지 않는다. 별하비스테이에서 가까운 밥집, 제주도 서귀포의 아직은 현지인 맛집  <괜찮은 부엌>은 그러나, 곧 스타 맛집을 예감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먹은 콩국수와 막걸리 한잔은 이번 제주 여행 최고의 만찬이었다.
 
오픈한지 삼 개월 정도 (23년 5월15일 개업) 된 로컬 식당이라 아직 소문이 짱짱하게 난 곳은 아닌데 곧 들썩이겠구나 싶은 깊은 손 맛의 곳. 음식이 이만큼이나 훌륭한데 '괜찮은 부엌'이라니, 나 같으면 '최고의 부엌', '짱 잘하는 부엌'으로 이름을 붙였을 거 같아서 머쩍게 웃은 곳. 
 

알맞은 시간, 서귀포 북카페 

행복이란 바라는 게 없는 상태다

 

 
집에서 걸어서 가까운 곳에 이 고요의 북카페가 있다니, 얼마나 행복인지. 제주 서귀포 여행자 분들은 아실 법한 <알맞은 시간>에서 짙은 고요와 은은한 제주 햇살을 누렸다. 이곳 시그니처 메뉴인 감자 케이크와 플랫화이트 곁에서 책장에 꽂힌 읽고 싶던 책들 한움쿰 집어다 한장씩 읽었다. 읽다가 뭉클해서 적어 놓은 문구. 
 

 

행복은 결국 바라는 게 없는 상태다.

박연준 <모월모일> 

 

 


 
 
보통날의 여행 시리즈를 연재해볼까. 
평일의 다른 말로 보통날이라 부르는, 일상의 언제든 오늘도 내일도 떠나는 보통날의 여행기.  
 
마음은 이미, 
보통날의 포르투와 마우이섬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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