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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Scene

노마드랜드, See you down the road

 

마음이 방황을 한다


방황이 내면의 힘을 챙겨 준다는 걸 지난밤에 알아챘다. 안주하고 머무르길 끔찍해하면서도 편안함에 취해 멈춰 섰을 때 문득 정신을 깨우는 방황 본능. 가까운 것들에게 집착하다가 아, 이대로 머무르면 안 되겠다 흔들어 털어내고 깨트리고 길 떠날 채비로 다급히 몸을 움직인다.

 

노년의 쓸쓸한 선택, 노마드 


아침부터 부지런히 도착한 곳이 명필름아트센터. 입장하자마자 잊었던 사랑을 재회한 듯 영화관이라는 애인의 품에 취해 잠시 울 뻔했다.

노매드랜드는 외로움이 절절하게 흐르는 영화였다. 시작부터 곧장 그녀, 펀이 되었다. 함께 놀라고 함께 울고 함께 노마드로 살았다. 우정도 머무름도 애틋함도 마치 내 것인 양 자주 훌쩍였다. 삶이 가질 수 있는 전부의 고독을 정면으로 마주한 듯 먹먹했다. 고독을 산다는 기분이 쓸쓸하고 슬픔으로 묵직했지만 당당한 온전함 같기도 했다. 

 

영화는 우리 삶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지배적인 글로벌 기업의 행태를 꼬집기도 한다. 내가 코스트코나 이케를 안 가는, 어쩌면 못 가는 이유는 전부 버려질 물건들로 보이기 때문이다. 기업은 세상 어딘가 아동 노동법이 없는 곳에서 하루 16시간 화장실 갈 시간도 없는 국가에서 만든 쓰레기를 생산한다. 우린 버려질 게 뻔한 물건을 계속 사고 그 빚을 갚느라 하기 싫은 일을 계속 하는거다. 우리들 중에 결국 나이가 들어 노마드를 선택하는 있음을 고발하듯 직면하는 영화를 보면서, 당연하게 내 얘기 같아서 더 아팠을지도. 


우리는 모두 떠난다  


가족의 곁도, 친구의 곁도, 모두의 곁을 떠나 산다. 나도 노마드로의 삶으로 떠날 수 있느냐고 자신은 있냐고 묻다가 아직은 머물고 싶다는 작은 소리가 들린다. 오늘은 그저, 방황도 힘이란 걸 알았으니 떠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것으로. 외롭고 쓸쓸하고 좌절스런 삶일 지언정 떠나는 선택 앞에서 당당하고 우아할 수 있다면. 

 

See you down the road


이유없이 먼 길을 돌아 돌아서 뜨거운 설렁탕 한 그릇을 비우고 도서관에서 웅크린 말들을 빌려 집으로 돌아왔다. 내려앉은 마음이 회복이 안돼 헝클어진 집안 곳곳을 뒤로하고 나만의 방으로 올라가 낮잠을 청했다. 잠들지 못하고 눈물처럼 흐르는 비 곁으로 와 혼자 와인을 마신다.

곁의 불편한 기척이 모기는 아니라 다행이다 싶을 때 루다가 오이를 입안 가득 물고 내려왔다. 엄마 뭐하냐고 안부를 살핀다.

Anyway See you down the 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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