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5)
STONER 스토너를 읽는데 자주 가슴이 시렸다. 그의 속을 알것 같기도 하고 모를것 같기도 했다. 가끔은 자신이 식물 같다는 생각이 들어 고통이라도 좋으니 활기를 찾을 무언가를 갈망하는 스토너에게 마음이 쓰였다. 한밤에 깨 새벽까지 줄곧 스토너와 함께였다. 그가 누구인지 소설 속 인물인지 멀리 아는 지인인지 내 안의 다른 나인지 모를 일이었다. 소설에 완전히 몰입한 깊은 밤에 죽고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절망감에 휩싸였다. 바로 그때 캐서린이 등장했다. | 가끔은 자신이 식물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자신을 찔러 활기를 되찾아줄 뭔가를 갈망했다. 고통이라도 좋았다. 이제 마흔두 살인 그의 앞날에는 즐겁게 여길 만한 것이 전혀 보이지 않았고, 뒤를 돌아보아도 굳이 기억하고 싶은 것이 별로 없었다. 나이 마흔 셋에 윌..
불안의 서 불안의 서 . 페르난두 페소아 어설픈 현자들은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여정이 곧 삶이라고 우리를 속여왔지만, 실은 내가 누구인지를 망각해야 하는 여정이 곧 삶일지도 모른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길을 잃는다는 뜻이다. 자기 감정을 탈수하고 자기 꿈을 독수리처럼 내려다볼 줄 알아야 한다. 그게 감정이든 꿈이든 나의 그림자든 간에. 그것들은 나 없이는 나타날 수 없는 하찮은 것이라는 사실, 나 또한 그만큼이나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채야 한다. / 내가 없음을 내가 아님을 미라클 모닝마다 되뇌이는 중에 페소아의 아무것도 아닌 나, 망각의 나 체념과 슬픔에 깊이 공감하며
희망 대신 욕망 나는 이제 우리가 각자의 내부에서 끓고 있는 어떤 뜨거운 것들과 정면으로 마주했으면 좋겠다. 김원영, 푸른숲 거의 모든 글에 밑줄을 긋는다. 아름다운 책.
배움의 발견 나는 케임브리지에 다니는 나 자신을 상상해봤다. 오래된 건물의 복도를 걸어가면서 기다란 검은 로브 자락을 휘날리는 대학원생. 그러나 다음 순간 나는 목욕탕에서 팔을 뒤로 꺾인 채 몸을 구부리고 머리가 변기에 쳐박혀 있었다. 나는 학생으로서의 내 모습에 정신을 집중하려고 애썼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검은 가운을 휘날리는 그 소녀를 상상할 때마다 또 다른 소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났다. 학자 아니면 창녀, 두 가지 모두가 사실일 수는 없었다. 그중 하나는 거짓이었다. 내가 말했다. 스타인버그 교수가 말했다. — 나의 얘기를 거리를 두고 기록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발휘한 흔적. 당신의 내적 외적으로 경험한 엄청난 얘기를 혼신의 힘으로 읽은 밤들. 잊지 못할 것 같아. 록산게이의 를 읽을 때만큼, 아름답구나 ..
철학책, 너의 운명은 너의 경험을 초월한다 밤에 읽는 소심한 철학책, 내용 중에 노자의 철학으로 ‘기관 없는 신체'를 해석하자면, 경계를 없애라는 이야기다. 우리 대부분은 자의적 경계 안에 자신을 가두고서 그것을 정체성으로 끌어 안는다. 들뢰즈에게 자아는 ‘나'의 존재론적 지위가 아닌 그저 ‘주어'의 문법적 지위에 불과하다. 고정된 주체는 없다. 마주친 우연과 나누는 대화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성질을 획득하는 ‘과정으로서의 분열증'만이 존재할 따름이다. 우리는 자유로운 선택을 한다고 착각하지만, 실상 자신이 겪은 한정된 범주 안에 종속된 타협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다. 마치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기 전의 인류처럼, 미지의 경계 밖으로 벗어나는 것을 추락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발전 가능성은 언제나 자신의 기억이나 자신의 발을 걸고 있는 사회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