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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돌고래 세마리



심난한 채 잠들었는데 아름다운 꿈을 꿨다. 허름한 숙소 화장실로 돌고래 세 마리가 찾아왔다. 반짝이는 청색의, 한없이 맨드라운 얼굴을 쓰다듬으며 그들과 물 위를 함께 날았다. 모두 몸집이 작은 아기 돌고래들이었고 나에게 더 없이 살가웠다. 그 중 한 마리가 우리말로 “바다에 잠시 다녀올게.” 했다. 셋이 줄지어 떠난 뒤 바라본 창밖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파리의 밤이었다.

이렇게 살아지는 건가보다 한다. 요즘은 특별한 걱정 없이 매일 밤 짧게나마 나에게 쏟을 시간이 아니 정력이 있기만을 바랄 뿐 다른 건 없다. 다만 시간이 어서 흘러 내일이 오고 또 다음날이 돼 나이를 먹고 중년이 되어 홀연히 훌쩍 비밀처럼 떠나도 탈 날 것이 없는 미래의 어떤 날을 그린다.

간혹 심난한 것은 마주치는 지금의 내 모습 때문일 거다. 고인 물처럼 정체된 상태의, 가진 것도 이룬 것도 없지만 혹시 있다 해도 놓아야만 하는 지금의 나는 방황하고 있다. 분명한 내 자리를 인정하고 반기면서도, 밀려오는 위기감을 의연히 대처하지 못해 찾아오는 의기소침함이 날 작게 가둔다. 기회인 양 변화를 꾀하지만 역부족이다.

이 부정의 기운을 떨칠 땐 한 방법으로 품 넓은 누군가를 그려보는데, 이젠 그것마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상상에도 현실의 제한들이 반영되나 보다. 시간을 흐르게 두는 수밖엔 없어 보인다. 꿈속에 찾아와 준 돌고래 덕분에 오늘은 별일 없이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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