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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er/One Pic One Tip

가을에 떠난 부산, 모티 사장님 추천한 영도 list.

 


 


매년 이맘때 부산으로 향하던 시절이 있었다. 영화를 보는 게 일이던 날들. 고레에다 히로카즈 신작을 누구보다 먼저 볼 수 있는 게 가장 신났다. 다르덴 형제와 켄로치의 영화 속을 걸었다. 그들 영화로 먼 세계의 낯선 삶을 겪으면 가슴이 저리고 아팠다. 일하는 영화인으로는 애송이였지만 영화인들 가슴의 꿈을 응원하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내게 특별한 ‘부산의 가을’을 다시 찾았다. 밤기차에서 내려 역 앞의 차이나타운을 돌다가 신발원 앞에 늘어선 사람들과 함께 줄을 서려다 말았다. 위스키 한잔을 하려고 구글앱에 검색하니 ‘여기다’ 싶은, 모티 mottie 를 발견했다.
 
부산역 근처 내가 선 곳에서 700m 라고 해서 호기롭게 걷다가 가파른 골목에게 놀랐다. 나는 부산이 이토록 가파른 도시라는 걸 처음 안다. 이를 앙 물고서 포기 없이 도착한 모티는 예약 없이는 입장이 어려운 곳이었다. 
 

 
“문이 열려 있었어요? 아, 어떻게 이런 일이 다 있지.”
 
난감한 듯 눈을 아주 크게 뜨고 놀라시길래
 
“아, 저기, 걸어서, 여기까지, 제가, 음, 꼭, 한잔만… 헉헉” 
 
거친 숨을 몰아쉬는 내 작은 몸통과 파리하게 흔들리는 눈빛이 통했을까. 다행히 바 테이블에 앉으라 해 주신다. 추천해 주신 코냑과 위스키를 나눠 마시고 사장님 말씀에 귀 기울였더니 천금같은 말씀이 후둑 후둑 떨어진다.
 
“제발 00 가서 만두 먹고 00 에서 돼지국밥 먹고 00 에서 복국 먹지 마요 . 서울 사람 인증하고 가시는 거예요. 여기 맛집은 검색으로 안 나와요.” 
 
그렇게 모티 사장님 추천으로 영도의 인생 맛집 여행이 시작된다.
 

 

모티 mottie
부산광역시 동구 망양로 669 지하

 
우선, 위스키는 모티에서 드시자.  
 
“브랜딩에 완성도가 생기려면 사옥이라는 피지컬이 보여야 된다”고 얘기한 민희진의 말을 떠오르는 곳이다. 내가 공간에 매료되는 이유도 그 공간을 만든 사람을 읽는 흥미 때문인데 이곳은 모티의 주인이 어떤 분일지 궁금하기도 전에 호감이 생겨버린다.
 
위스키와 꼬냑을 예의를 다해 대우하는 곳이자, 내가 믿는 것을 고집하자는 철학자의 사유 공간을 닮았다. 진짜만을 다루고자하는 아우라가 강력하다. 자연스럽게 내 공간에 대한 상상이 20년 된 꼬냑의 향만큼이나 그윽하게 차오른다. 
 



걱정말고 설레여라!



 

왔다식당
부산광역시 영도구 하나길 811 

 
“아, 전날 술을 좀 더 마실걸, 다시 태어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텐데 …”
 
요 느낌 아시는 분들은, 왔다 식당에 가시자.
한우 스지 된장 전골 추천한다. 
 

 

한우 스지는 소 한 마리에게서 1-2KG 밖에 나오지 않는다. 귀한 음식을 정갈하게 대접받는 느낌이다. 편안한 로컬 식당이라 타지 사람의 눈으로는 이런 기품의 맛집인 걸 알아보기가 어렵다. 우리가 정말 원하는 그거, 아직 관광객은 모르는 로컬 맛집, 거기가 여기다. 오전 8시 반에 오픈한다. 해장을 위한 아침 식사는 꼭 여기로 하자. 
 



청해수산 
부산 영도구 태종로113번길 35

 
봉래시장 입구 안쪽에 청해수산에서 모듬회 소자 또는 중자 시키면 좋다. 초밥은 계속 계속 리필이 된다. 동네 인심으로 욕심 없이 회 떠 주시는 곳이라서 부산 분들이 두루 찾으시는 거 같다. 맛집이라고 찾아서 들른 곳에 타지 사람들 앉았는 것보다 현지 분들 앉아 계실 때 안도감 같은 거 들지 않나. 여기도 그렇다.  부산하고 소란하지 않고, 이것 저것 더 주문하도록 유도하지 않고 소박하게 그러나 충분한 한 상이 차려진다. 
 


 

청학소담
에어비앤비 

 
영도의 숙소는 여기로 정했다. 가파른 오르막을 지나 99층 계단을 올라야 닿을 수 있는 곳이다. 짐이 많거나 다리가 불편하면 어려울 수 있다. 큰채와 작은채가 나란히 붙어서 독채 느낌은 덜 할 수 있는데 괜찮다 하심 영도의 야경과 탕목욕을 맘껏 누릴 수 있고 침실의 큰 창에서 영도의 바다가 내려 보일 뿐만 아니라 생 원두와 그라인더가 준비된 여기만한 곳을 찾기는 쉽지 않을 거 같다. 난 사전 정보를 인지하고서 큰 마음을 먹었더니 되게 괜찮게 당도해 이틀동안 네 번의 탕목욕을 노천탕처럼 원없이 하고 행복했다. 가파른 99개의 계단을 오르자. 
 

 


 
나는 여행지의 택시 기사님과 대화하길 즐긴다.
내가 경험한 모든 기사님은 모르는 게 없는 선한 분들이다. 
 

기사님 영도가 가파르네요. 

 
여기가 전부 산이었어요.
내가 여기 산지 60년 됐거든요.
여기에 아파트가 들어설 줄 누가 알았겠어요.
부산이 세계적인 도시가 된 게 영도 때문이에요.
거센 바람 다 막아주잖아. 
 
요즘 젊은 사람들 영도에 많이 오죠.
저도 이번에 처음 왔는데 와 보고 싶었어요. 
 

그게 다 sns 때문이에요.

우린 너무 고맙지.
이렇게 알려지는 게 얼마나 좋아요. 
 
 
나는 이 짧은 대화에서 가슴이 폭신해졌다. 다들 sns의 폐해를 얘기하는 시절이 아닌가. sns의 수혜를 입었다 하시는 것이 뭐랄까. ‘의미꾼’의 면모랄까. “의미'하기도 실력이거나 재능인 거 같단 생각을 늘상 하는 나는, 이 순간 하루치 영감을 전부 충전한다. 일상의 작은 행복을 알아채는 이들은 모두 의미꾼들이다. 나는 지금 택시 기사님이 아니라 마음 뿌듯한 영도의 아들과 대화 중이다. 누군가의 가슴 속 자긍과 긍지를 듣는 일이 흔치 않아진 요즘, 감사한 마음 안고 택시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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