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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er

교토 여행, 흔들린 시간

 

세 번째 교토여행 


세 번째 교토다. 도쿄와 오사카, 후쿠오카와 오키나와를 합치면 우리 제주만큼 자주 들르는 일본. 이곳 특유의 디테일에 감동하게 되고, 입맛의 음식을 가볍게 두루두루 맛볼 수 있으니 여행지로는 정말 취향의 나라다.

 

 

 

극진한 정성이 시스템이 된 나라 


이곳 이자카야에서는 저마다 개성의 규칙과 배려를 알아채는 일이 즐겁다. 따뜻한 물수건을 건네는 수고로움이나, 주문이 한참 밀려있지 싶어도 나를 위한 생오이와 생가지를 그 자리에서 썰어 묻혀주고 구워주는 '정직한 태도'에 늘 감동한다. 허름해 보여도 깔끔한 온기가 더해진 화장실 문화는 이곳으로 날 이끄는 결정적인 힘이다. 극진한 정성이 시스템이 된 나라에서 나는 꽤 쾌적한 리듬 속 여행을 즐길 수 있다. 

 

 

 

한편 오다가다 마주치는 사람들은 웃음기 없는 무표정이다. 비슷한 문화권에 사는 내가 고된 하루를 마치고 귀가하는 모습과 닮았다. 타인과 눈길과 미소를 마주하지 못하다가 가게에 들어서야만 극진한 정성과 디테일을 경험하는 게, 이 나라를 여행하며 느끼는 단 하나의 아쉬움이 아닐까. 당연히, 언어를 배우고 관계를 우선에 둔 새로운 경험을 계획하는 이유기도 하다. 

 

 

 

아름다운 카모강 

 

카모강 가까이에 사흘을 살았다. 깨끗하고 고요한 동네길을 걸었다. 까마귀가 낮게 날고 크게 우는 곁에서 새벽 해가 뜨는 걸 가만히 보고 올해 목표를 되뇌었다.

 

나를 아는 시간이길.
knowing how you are

기여하는 것을 찾자.
find a way to serve

늘 옳은 일을 하자.
always do all right things

 

 

 

교토에서 지진을 경험하다 


내가 앉은 호텔 의자가 뒤뚱뒤뚱 흔들린 건 둘째 날 오후 3-4시쯤이었을까. 찻길 곁의 진동일까 생각하던 게 흔들림이 점점 불어나 공포로 얼어붙기까지 3-4분 정도 흘렀을까. 위기의 순간 밖으로 뛰어 나가야 하는지 그대로 멈춰 서 기다려야 하는지 몰랐다. ‘그대로 자리를 지키라’를 듣고 따랐을 아이들이 떠올랐다. 하라는 대로 하지 않아야 하는데, 아무런 안내 메시지가 없다. 창밖을 보니 동요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 일 없는 듯 걷는 모습이 기괴하다. 흔한 일인가.

나는 공포에 사로잡힌 동시에 바로 떠날 수 있는 항공 티켓을 검색했다. 다시 일본에 올 수 없겠어, 취향의 여행지를 포기하는 마음 속 말들이 소란했다.

 


처음으로 여기 사람들의 무표정에 대해 생각해본다. 두려움을 안고 사는 표정 . 어쩌면 늘 위험에 대비하느라 뼛속 깊이 새겨진 긴장이 아닐지. 극진함에 가까운 친절한 태도에는 매뉴얼을 따르지 않으면 모두가 위험하단 위기의식 같은 게 숨은 걸지도 모르겠구나 싶었다. 

 

 


편의점에서 초밥 8개가 담긴 도시락과 정갈한 한입 크기로 4조각이 담긴 다홍색 단감 그리고 크림롤케이크와 핫코히를 계산했다. 카운터의 중년의 남자분이 천천히 하나하나를 비닐봉지에 담더니 초밥에는 젓가락이 필요하겠군, 감과 빵에는 포크가 필요하겠지 살피면서 봉지 속에 젓가락과 포크와 냅킨 등등을 쏙쏙 담아 주시는 게 아닌가. 이 붐비는 편의점에서 정성의 디테일을 다시 경험한다.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교토 여행 다시 오게 되겠구나,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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