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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er

굴업도백패킹, 핸드폰 화장실 전기 없이 전부 가질 수 있는 경험



굴업도 백패킹이 버킷 중 하나지만 어디서 얼마나 배를 타야 닿을지 몰랐다. 유난히 붉게 뽐을 내는 새벽 하늘에 감탄하면서 아무튼 출발. 직감이 늘 나은 선택이라 믿는 내가 작은 텐트 하나를 챙겼는데 이 무모한 여행이 용감히 비상하는데 결정적이었다.

목베개를 안고 여행을 다녔던 나란 사람이 새롭게 다시 번지는 시절이라면 (이거슨 요즘 나의 화두) 다른 공식을 취하고 싶었다. 대부분의 짐을 내려놨다. 당일 아침 단촐한 네 짐과 비교해 여전히 과한 여벌 옷과 에프엠투 필카와 화장품 비상약 파우치 절반을 한번 더 덜었다.

비가 온데, 비가 오면 어뜩해.
비가 오면 맞아야지. 뭐가 걱정돼? 감기 걸릴까봐?
아니, 감기는 백번도 걸릴 수 있는데 꿉꿉하니까. 나 비옷 하나만 살게.



결국 짐이 될 비옷을 챙긴 뒤에 비 걱정을 멈춘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숨 고르게 평정한 널 믿고 싶었다. 징징 거리느라 쓰레기통에 던져지는 결말만큼은 피하자 다짐했다.

 



너는 야생하는 동물처럼 맨발로 자연을 누볐다. 굴업도로 항해하는 나래호에서는 우리가 앉을자리 이상으로 돗자리를 길게 펴더니 서성이는 분들에게 앉으시라 권했다. 우린 타인과 나란히 앉아서 각자 읽거나 적었다.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를 읽던 네가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했다. <무한화서> 를 읽는 나는 ‘어쩌면 미친 것들에게 사연 하나씩 찾아주는 시를 사는 걸지도 몰라’라고 적었다.

우릴 가만히 보던 한 아저씨가 물었다. 텐트 칠 거예요? 네네 맞아요. 랜턴은 있어요? 모기약은 있어요? 아뇨, 처음이라 챙기지 못했어요. 영…. 차림이 불안한데. 그렇죠 그렇죠.

 

해보고 어렵다 싶으면 내려올 거예요.



텐트를 땅과 연결시킬 팩이 없었다. 바람이 셀 거야. 그냥 철수하고 민박할까 싱숭생숭해서 허둥대는 내게 “배낭 올려놓자. 안 날아갈 거야.” 순하디 순한 줄 알았던 네가 아저씨의 참견인지 걱정인지을 대차게 끊었더니 내 우유부단한 동요도 재운다. 단순한 원칙이 읽혔다. 그대로 수용한다. 일어나지 않은 일은 걱정하지 않는다. 지금 할 수 있는 걸 한다.

 



너는 저 멀리까지 맨발로 걷다 돌아오면 가만히 누워서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를 펼쳐 읽었다. “무엇을 소유한다는 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 거야?” 방전되려는 핸드폰을 살리는데 골몰 중인 내게 장난기로 물었다. 무엇을 소유한다는 건 집착을 부리는 괴로움이지. 둘이 낄낄 웃다가 이제 내려놔, 그래 내려놔. 듀엣처럼.

 


너는 텐트 안 공간이 몸 뉘일 수 있는 밖 중에 최고 밖이라고 생각한 내 경계를 허물고 텐트 밖에 누웠다. 나도 따랐다. 몸이 땅 위에 꼭 맞게 포개졌다. 파팍파팍 제멋대로 소란한 바람을 그대로 맞았다. 자연에 누워서 별을 보다가 까무룩 잠들다 눈을 뜨면 별,이었다.

서이장님 댁 점심밥을 마지막으로 삶은 계란 하나, 에일맥주 반캔 을 나눠 먹었다. 화장실 전기 핸드폰, 없어본 적 없는 것들이 사라지자 자연스럽게 허기도 무엇을 더 원하는 상태도 사라졌다.

시간을 놓치고 살다가 내리는 빗소리에 새벽임을 알았다. 침낭이 축축하게 젖기 시작할 때 철수!! 훈련병들처럼 벌떡 일어났다. 내가 비옷을 챙겨 입는 동안 친구는 맨발과 맨몸으로 텐트를 걷어 접었다.

 


짐을 모두 챙겼을 무렵 새벽 비가 가늘어져 덕분에 헤어지기 싫은 개머리언덕을 걷고 아무 데나 앉았다. 40년 전 마이클 싱어처럼 '무無’ 하면서 머릿속 잡소리를 지웠다.

맨발로 성큼성큼 걷는 네 뒤를 따라가다 미끄러운 내리막에서 넘어질까 봐 두려울 땐 발바닥을 열두 조각으로 소분해 상상했다. 각 부분마다 힘을 실어 응원했다. 잘하고 있어! 다치지 말자 안전하자 기쁘자 감사하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 팀이었다. 몸이 앞서 주저하는 생각을 다스릴 때는 마치 훌륭한 리더가 된 듯 스스로가 우아하게 느껴졌다.

 

그때, 소문으로만 듣던 굴업도의 사슴들과 마주했다. 

나는 아직도 이 경험이 내 경험이라니 믿을 수 없다. 바라지 않는다. 일어나는 일에게 저항하지 않는다. 그대로 수용한다. 우리가 한 건 이 삼종 세트뿐이었다. 바라지 않았는데 다 가질 수 있다니. 내려놓았는데 충분해지다니. 신비였다.

 



내가 지난 일 년 간 집중한 끌어당김의 법칙은 이랬다.
간절히 원해라. 바라는 상태의 감정을 가져라. 진짜인 것처럼 믿어라.

네가 잠들었을 때 우연처럼 펼쳐진 책 속 한 구절을 걸음마다 따라 말했다.

 


그런가?

 

선사는 거짓이든 진실이든 나쁜 소식이든 좋은 소식이든 “그런가?”하고 정확히 똑같은 방식으로 반응했다. 그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지금 이 순간이 취하는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고 인간 드라마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오직 이 순간만이 존재하며 이 순간은 있는 그대로일 뿐이다. 일어나는 사건을 자기화하지 않는다. 저항하지 않고(무저항) 판단하지 않고(무판단) 집착하지 않는 것(무집착) 이 세 가지는 진정한 자유와 깨달음의 세 가지 측면이다.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에크하르트 톨레

 

 

 

굴업도에서 마주친 사슴들, 반가워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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