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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여행한 후에 남겨진 것들

2011. 8. Los angeles


가리지 않고 먹었다. 특히 고기라면 바비큐에서 맥도날드까지 그 종류도 다양했다. 남은 음식물은 컵이고 접시고 빨대고 휴지고 구분 없이 함께 휴지통으로 훅 밀어 넣으면 그만이었다.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라더니 분리수거 제도만큼은 허술한 건지 선진국의 오만함인지 쓰고 버리는 일이 이상하리만치 쉬웠다. 텀블러도 챙겼지만 비행기 안에서 꺼내기는커녕 트렁크에 넣어두고 그걸로 끝이었다. 물이요 쥬스요 와인이요 주문하며 받아 쓴 종이컵만 열 개는 족히 넘을 것이다. 한번 쓰고 버려질 걸 뻔히 알면서도 잘 빠진 모양이 탐나 기어코 뜯어내 비누 샴푸 치약은 일회용을 즐겨 썼다.

 

어차피 이곳에선 어떻게 보이든 상관없단 생각이었지만, 실제로 아무도 날 주시하지 않아 마치 투명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오직 매장 안에 들어서야 방긋한 미소를 만날 수 있었다. 귀한 미소를 저버리고 싶진 않았지만, 빈 지갑을 만지작거릴 밖에. 실은 진열된 전부가 갖고 싶어 쓴 가슴을 쓸어내리느라 바빴다.

 

하늘이 준 선물 같은 햇살을 받으며 즐길 자격이 있느냐고 물으면 옳은 대답을 뱉을 수 없다. 맹탕으로 살다 어쩌다 마주친 기회로 지구 반 바퀴를 날아 온 여행. 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나. 여행 후 남은 건 무얼까. 세 켤레의 신발과 빨간색 머플러 같은 것들. 없어도 그만인데 물욕을 감당 못해 꾸역꾸억 가방에 집어넣은 것들 모두 빚이니 우선 그것부터 갚아야 한다.

 

로스앤젤레스의 태양은 유혹하듯 작열했고 라스베가스로 가는 사막 길은 기대 이상으로 신비로웠다. 놀라운 대자연 아래에서 인간이 만든 덫에 걸려 허우적거린 꼴은 아니었는지. 언젠가 다시 이곳을 걸을 수 있다면 하늘과 나무 그리고 바람소리로 충분한 그런 여행을 이루고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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