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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것처럼 지내고 있었다 잊혔을리 없다. 기대도 않는다. 다만 요즘 잠잠했다. 마음으로 전하는 침묵의 안부도 꿈속의 조우도 뜸했다. 잊혀진 것처럼 잊은 채 지냈다. 충분한 기억으로 남았음이 얼마나 다행이냐는, 여행집의 한 구절을 읽다 그만 또 떠올렸다. 그렇게 밤을 지새면 안 될 것 같아 애써 뒤척여 애써 선 잠에 들다 깼다. 평소와는 다르게 무심히 켠 라디오에서 함께 듣던 노래가 흘렀다. 겸험의 '기억'이란 존재보다 강하다. 더 나은 나였다면 그만큼 아픈 엔딩은 피했을텐데. 그리움과 아쉬움은 추억과 같은 말. 절절했던 그 시간의 보상은 기억 뿐일까.
마법에 걸린듯 취하는 술 언제부터 모히또의 마법에 걸렸을까. 아마 난... 왠지 모를 먼 타국의 생경한 이름에 끌려 첫눈에 후한 점수를 주었고, 달콤쌉사름한 맛에 전부를 내 주었는지 모른다. 그리곤 그저 모히또라면 좋아서 마시고 또 마셨다. 최근 서글서글한 백주부가 흑설탕을 큰 스푼 담아 깻잎과 레몬을 으깨 소주와 사이다를 섞어 만든 모히또를 소개했다. 그 뒤로 내 머리가 푹 담겨도 넉넉하게 남을 만한 우리 집 유리 대접엔 깻잎 모히또가 제조 돼 있다. 가짜 모히또도 제법 그 맛이 괜찮다. 1930년대 남미 쿠바의 칵테일바 메뉴판에 처음 그 이름이 소개됐다는 모히또는, 당시 쓰인 'mojo'가 어원이 된다. '마법에 걸린 듯'이란 뜻의 'mojo' 에서 마법에 걸린 듯 취하는 술 'mojito'로 변신한 셈이다. 기쁨과 광란이 ..
들에 핀 꽃, 기화 누나 요즘 어때. 계속 술이 땡겨. 뭐가 힘든가. 왜 어떤데. 그냥 계속 차분해 지지가 않고 마음이 뒤숭숭해. 뭐랄까... 바람 나고 싶은 기분 같은거. ... 누나 원래 그랬자나. ... 나름 오래된 관계인데 처음과 다름 없이 수시로 안부 묻고 만나고 밥먹고 술마시는 우리. 이 관계가 편안하게 유지되는 건 우선, 이 아이가 날 많이 포용해 주기 때문이고. 오늘 느낀 또 하나는. 처음부터 줄곧 솔직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떤 말이든 스스럼 없이 얘기할 수 있는 관계 어떤 개소리든 진지하게 듣고 너가 틀렸어 정신차려 미쳤구나 하지 않고 그저 서로의 내일을 미래를 현실과 꿈을 지긋이 응원해 주는 관계여서 가능하단 생각을 했다. 너 없음 어쩔 뻔 했니.
행복의 기원 2006. London 버트런드 러셀도 경계하라는 '쾌락'을 인간의 진화에 필요한 유전적 요소라고 얘기하는 을 손에 잡기 무섭게 읽어 내렸다. 행복을 좀 다르게 보자는 관점이 좋았고 순식간에 빨려들었다. "익숙한 철학의 안경을 벗고, 진화론적인 렌즈로 행복(쾌감)의 본질을 좀 더 깊게 들여다 보게 되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 행복은 사회적 동물에게 필요했던 생존 장치이다." 학생 시절 학교 담을 넘어 친구네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 돌아오곤 했다. 치마자락을 휘날리며 담벽락을 뛰어 내리는 동시에 적발돼 혼쭐이 나는 줄 뻔히 알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왜냐고?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낄낄 '행복'했으니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매 순간마다 겁이 없고 어떤 대가보다는 즐거움을 따른 그간의 나의 행보에 '참 잘..
까만 터널 신발을 내리 바꿔 신으며 시간을 끄는 아이를 애써 인자하게 바라봤다. 바쁜 아침시간이라 항상 서두르는데 그럴수록 애와 투닥투닥하게 되길래 참을 인자를 새기고 또 새기고... 다행히 잘 넘긴다 싶었는데 ... 시동을 켠 뒤 곧바로 사달이 벌어졌다. 흙놀이 때문인지 오톨도톨한 아이의 손등이 걱정돼 로션을 발라주마 했는데 단호하게 싫다길래 아이의 손등을 툭툭 내리 치며 소리쳤다. 그게 뭐 그리 힘들길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너 손 가려울까봐 발라 준다는 거잖아! 일부러 엄마 힘들게 하려고 그러는 거지! 금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아이에게 지지 않고 더 세차게 달려들었다. 다시는 챙겨주나 봐! 걸핏하면 하는 협박. 두려움에 떨던 눈빛은 조금씩 분노로 초점을 잃고 먼 땅을 응시한다. 나도 알고 있다. 저.....
나는 배웠다 나는 배웠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뿐임을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선택에 달린 일 나는 배웠다 내가 아무리 마음을 쏟아 다른 사람을 돌보아도 그들은 때로 보답도 반응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신뢰를 쌓은 데는 여러 해가 걸려도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임을 삶에 무엇을 손에 쥐고 있는가가 아니라 누가 곁에 있는가에 달려 있음을 나는 배웠다. 우리의 매력이라는 것은 15분을 넘지 못하고 그 다음은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 더 중요함을 다른 사람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하기보다는 나 자신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해야 함을 나는 배웠다. 삶은 무슨 사건이 일어나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일어난 사건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달린 것임을 또한 나는 배..
놓는 법 2014. 5. newyork 아이폰 6 플러스. 100만원에 샀다. 아직 잔금을 17개월 더 부워야 완전히 내 것이 되는데 어제로 액정을 세 번째 깨먹었다. 수리비만 40만원이 넘는다. 다행히 앞 두 차례는 월 4700원씩 부은 보험 덕분에 자기 부담금 8만원 정도로 해결했다. 이번엔 안된다. 보험 보장액이 바닥났다. 사설업체 수리비용은 27만원. 귀찮으면 침대 위에 휙 던졌다 성가시면 가방에 훅 넣었다 하는 고가의 애물단지. 요놈이 내 속을 또 긁는다. 띠디딩딩디디딩 허겁지겁 꺼내보니 내 전화가 아니었다. 무심히 도로 넣는데... 가방 주머니에 쏙 들어가야 하는데... 가방과 바지 그 사이로 떨어진다. 시멘트 바닥에 닿자마자 기대보다 훨씬 연약한 액정이 산산이 조각난다. 지난 후회라면 치를 떠는 내가..
봄타기려니 2015. 3 꽃은 피지만 여전히 스산한 바람이 부네 싶더니... 금새 등줄기에 땀이 찬다. 수년 전부터 입버릇처럼 봄이 사라지려나 했는데 결국 그리 되나보다. 아마도 머지않아 내 친구 보미를 '봄'이라 부를 때에만 '봄' 소리를 내게 되려나. 꼭 그래서 만이 아니라 ... 허한 요즘이다.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은 상태가 길어지고 있다. 지금 여기의 내가 밉다. 돌아보면 어디서든 반복되는 내 한계다. 나에게서 답을 찾자며 들쑤시다가 이내 자존감이 바닥나는 악순환. 도망치거나 모른척 뭉개다가 결국... 어떻게 되더라. 어젠 문득, 오늘의 아픔이 고민과 노력 없이 허송세월 보낸 소녀 시절에 대한 대가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게 맞다면 누군 빠르게 누군 느리겨 겪을 터 크게 상심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