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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적신 예술 사진, 라이언맥긴리의 브래드피트 비밀스런 아픔을 치유하는데 카메라만큼 어울리는 도구가 또 있을까. 저 그렁거리는 눈물에 의미를 담아 본다. 저 날, 브래드피트도 조금은 위로받지 않았을까. 알코올에 의존했다는 가십을 인정하고 고백하게 된 데 맥긴리와의 작업이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치부를 인정할 때의 해방감 같은. 보이는 대로 찍는 것 같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끌어올리는 진한 스킨십이 있을 때 사진 예술은 빛을 발한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두 밤을 꼬박 그의 사진을 감상하다 잠이 들었고 어젯밤 그가 꿈에 나왔다. 이미 취한 그. 우린 언제나처럼 썸을 타는 관계였는데 그는 만취 직전의 상태로 술병을 거칠게 따더니 술잔에 콸콸 부었다. 더 마시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목 끝에 걸어 놓고 비틀거리는 그를 아프게 바라보았다. 그 다음 얘기는 ..
에세이라는 막막함 에세이, 수필의 다른 말. 수필,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인생이나 자연 또는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쓴 산문 형식의 글. 오래오래 전부터 꾸준히 여행 에세이를 챙겨 읽은 독자로서 어떤 에세이를 좋은 에세이라 부르냐고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 앞에서 막막하다. 이제껏 여행하는 것에 아깜이 없었고, 여행할 때면 어김없이 한 손엔 여행 에세이를 챙긴 독자로 어려운 질문도 아닐텐데... 이토록 막막하다니. 내가 좋아하는 에세이를 떠올려 본다. 여행지에서의 말랑말랑한 감성만을 풀어 놓은 책에는 사실 별 흥미가 없다. 여행지에 대한 배경 지식과 문화, 현재의 도시 풍경과 로컬들의 사는 모습을 꿰뚫는 통찰력을 가졌을 때야 만족한다. 스스로의 감상 또한 일차원 적인 느낌에 한하기보다, 내면 깊숙이..
키우기 쉬운 자식이 있을까마는 ... ​ 키우기 쉬운 자식이 있을까마는 아들 너는 어렵다. 아침부터 눈물 훌쩍이며 전화가 왔다. 엄마.. 흑흑 엄마... 흑흑 응 한젤아 왜? 말해봐 왜? 무슨일 있어? 만원 지하철 안에서 최대한 상냥하고 부드럽게 대꾸했지만 대답을 들을 순 없었다. 계속 흐느끼기만 하길래 "한젤아 엄마가 일찍 갈게, 알았지?" 하고 끊고는 다시 출근길 긴장 모드로 전환했지만 당연히 마음은 편치 않았다. 이른 출근 중이니 30분이라도 이른 퇴근을 제안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단축 근무 중이라 눈치가 보이겠지만, 오늘은 그렇게 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어젯밤 일이 걸렸다. 아들 마음에 여진이 남았나 싶어 걱정이었다. 어젯밤 한젤의 폭풍 오열을 보았다. 발단은 준비물을 못 챙긴 한젤을 여자 아이 둘이 수업 과정에서 따돌린 모양이었..
집 짓는 일 #1 건축가와 건축주 instagram @australian architecture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이따 뵐게요. ... 고맙습니다. ... 벌써 너무 많은 인사말이 씹혔다. 이런 일방적인 관계는 짝사랑도 드믄 내게 첫 경험이나 마찬가지라서 어떻게 다뤄야 할지 당황스럽다. 회사 동료라거나 거래처 누구라거나 옆집 아줌마라면 애써 무시하고 적당히 거리 두며 살다보면 잊혀질 터. 억 단위의 프로젝트, 그 중 반은 빚인 가슴이 답답한 일생 일대의 결정에 그 누구보다 중요한 키를 쥔 사람. 남은 인생의 흥망을 손에 쥔 자, 나의 건축가 얘기다. 바보같은 솔 메이트가 되리란 꿈도 거품이 되었다. 나의 가장 큰 문제가 '기대감' 이란 걸 잘 알지만, 기대가 이만큼 흩어져 파편으로 사라진 경우는.... 이 얼마나 불운인가...
세 번째 와인데이 ​​​ 시칠리아 레드와인 라무리 lamuri 네로 다볼라 품종 태양이 좋은 시칠리아산 와인은 아마 처음 맛본다. 톡 쏘는 과일향은 십여 분 지나 차분해진다. 부드럽고 감미롭다. 과일향이 조금 뭉개져 은근하게 퍼진 느낌을 좋아한다. 나의 취향의 와인을 찾는 중인데 오늘 어렴풋이 알았다. 체리와 장난처럼 시작한 와인데이가 벌써 세 번째다. 둘만을 바라보며 서로를 말해주거나 들어주는 시간인데 제법 힐링이 된다. 오늘은 최근 읽은 책을 서로 나눠 얘기했는데 난 김민철을 체리는 리베카 솔릿을 가져왔다. 서로 다른 느낌을 나누고 취하는 시간이라 영감이 가득하다. 내가 닮고 싶은, 자극의 친구에게 듣는 사고 방식부터 시선의 얘기들에 공감하다가 또 반기를 들다가 하면서 시간이 훌쩍 깊은 밤이 됐다. 다른 감동은 차치하..
4년 전의 오류들 한젤이의 다섯 살을 꺼내 보는 일은 다섯 살 루다를 바라보다 시작됐다. 매일 빛나는 눈동자로 내 곁을 맴도는 루다를 물고 빠는 요즘. 하루가 다르게 길어지는 손가락 마디를 확인할 때마다 아쉬운 마음에 “루다야 천천히 커야 돼, 알았지?” 라고 당부하는 요즘. 별안간 한젤이의 다섯 살이 궁금했다. 루다와 알콩달콩 애정신을 펼칠 때마다 어디선가 집중해 책을 읽거나 리코더를 불고 있는 한젤이는 기특하게 자라 이제 10살이 된다. 기특한 한젤이. '기특'에 갇혀 지내는 건 아닐까, 조용히 한젤이 곁으로 가 동생에게 하듯 꼬옥 안아주었다. 입꼬리가 귀에 걸려 천진하게 웃는다. '기특하다'는 말은 동생처럼 굴지 않는다는 말과 결이 같다. 어른스럽게, 형답게 행동해야 듣는 이 말은 ‘어른’을 위한 칭찬이다. 어린이는..
정신의 지중해 "그러니 중요한 것은 일상에 매몰되지 않는 것, 의식의 끈을 놓지 않는 것, 항상 깨어 있는 것, 내가 나의 주인이 되는 것, 부단한 성실성으로 순간순간에 임하는 것, 내일을 기대하지 않는 것, 오직 지금만을 살아가는 것, 오직 이곳만을 살아가는 것, 쉬이 좌절하지 않는 것, 희망을 가지지 않는 것, 피할 수 없다면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 일상에서 도피하지 않는 것, 일상을 살아가는 것. " 모든 요일의 기록, 김민철 지음 동의하고 또 동의한다. 나도 (예전의) 그녀처럼, 매일 회사에 출근하면서 매일 회사에 가기 싫다. 매일 출근하는 아침을 믿을 수 없어 하며 출근하면, 막상 아무렇지 않게 일하고 심지어 가끔 어떤 날은 열심히 한다. 그녀가 김화영의 에 이어 알베르 카뮈로 달음박질치면서..
라라랜드 lalaland 가끔 그 음악을 듣거나 바람결에 익숙한 향이 돌면, 과거의 선택을 뒤집어 '만약'을 상상한다. 사랑이 꿈을 지지해 주었고 꿈도 사랑을 원하던 때였다. 사랑과 함께라면 뭐든 가능할 것 같은 불안한 미래에 공들였다. 어느새 사랑도 일상이고 꿈도 현실이다. 당연히 상상의 그림은 금세 파편으로 흩어진다. 어떤 선택도 아플 테니까. 이미 시작하지 않아도 결과를 잘 아는 어른인지라 단념도 습관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라랜드가 날 흔든다. 아직 꿈의 불씨가 살아있음을 알려주듯. 오랜만에 느끼는 영화의 힘. 좀 더 미쳐 볼까봐. 남들과 다른 색을 보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