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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기꺼이 무릅쓰는 일


사흘만에 루다를 만났다. 우리 만나면 한 챕터씩 읽는 아름다운 가치사전을 들고 품으로 달려 안기는 루다와 '마음 나누기' 편을 읽었다. 루다야 엄마가 아까 먹고 있던 귤을 너랑 나눠 먹은 것도 마음을 나눈 거지. 루다가 방긋 웃는다. 우리 만나지 못하는 날에는 감사 일기를 한편씩 적고 스티커를 모으는데, 오늘은 하굣길의 감사함을 깨달은 모양이다. 스티커 열개가 모이면 원하는 걸 선물 주기로 약속했더니 제법 잘 챙긴다.

눈에 잠이 가득한 루다. 나와 여러 얘길 나누다가 잠들고 싶다고 말했다. 원하는 걸 정확히 요청하는 이 아이를 너무 사랑해서 글썽글썽한 기분이 되었다. 내게 보내는 저 순수한 눈동자는 오늘 밤의 선물이다.

엄마는 지금이 제일 좋겠지만 만약에 억만장자가 된다면 뭘 제일 먼저 하고 싶어? 엄마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 중에 원하는 게 있어? 엄마 어렸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가 늦는 날에 무서웠어? 아직도 생각하면 짜증이 나는 날이 있는데 엄마, 그날은 정말 최악이었어.

루다의 최악의 하루를 듣다가 배꼽이 빠지게 웃다가 너무 예뻐서 가슴 시리게 가득 입맞춰 주었다. 날 닮아 자주 허는 오른 입술 가장자리 안쪽 자리에 페리덱스를 펴발라 주었다. 금세 콜콜 잠든 루다 곁에서 우리 밤 작은 의식의 장면을 이토록 소중하다 여긴 적이 또 있었을까 묻는다.

우리에게 애틋함이 허락된 시간은 짧을 것이다. 함부로 불평할 수 없다. 이 불충분함을 기꺼이 무릅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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