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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er/꿈꾸는 그림

아들 둘과 떠난 여행


아들 둘과 여행 떠나기 전, 


이토록 다른 두 강아지들 데리고 여행 다녀왔다. 셋의 첫 여행이라 어떤 마음들인지 궁금해 재차 묻는데 루다는 기대돼 기대돼 수영장과 호텔방!이라고 감정과 구체적 요소까지 재잘거리는 반면에 한젤이는 기대 안되는데, 라며 시크하다. 그럼 왜 가는 거야? 포기하지 않고 질문하는 내게 어제 마트 같이 못 같으니까 (이번엔 같이 가주는 거야) 같은 묘한 뉘앙스의 말을 이어 주길래 고마웠다. 말수 적은 아들의 말소리가 고맙고 오락 가능한 기기도 스스로 내려 놓고 그저그럴 엄마와의 여행에 임하는 저 포용적이고 심플한 마음가짐이 더 고마웠다.


문득 이 뿌듯함은 뭐지 묻다가,

 

문득, 이토록 다른 두 녀석을 낳은 나는 세상에 뭐 이토록 멋진 일을 일으켰나 싶어서 깜짝 놀랐다. 얘네들을 내가 낳았다고? 뿌듯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늘 실망하고 아직도 이 수준이냐고 타박하지면서도 겨우 이런 나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다. 내가 사랑하는 나의 아들들, 사랑스럽길 넘어서 위대하고 신비롭다.


감정이 기억으로 남는다니,

 

사실 각오했다. 잠재의식을 알수록 오랜 기억이 되는 순간마다의 감정에 집중해야지 싶었다. 이 아들들이 어른이 되기 전, 남은 시간동안 만이라도 나와 함께일 때는 오랜 기억이 될 기쁜 감정들을 두루 선물하고 싶어서, 다투지 말자 지휘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일러 뒀다. 그간 상황에서 오는 스트레스한 감정과 이어지는 태도들을 감당해 준 것에 사죄하는 마음도 컸다.

언제나처럼 주려 하면 받는다. 특히 아들들은 늘 그랬다. 내가 보낸 사랑보다 내게 보낸 사랑이 크게 느껴졌다.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그대로의 모습이 온전하고 충분하다고 늘 상기시켜 주는 존재들.


서해바다의 새벽 부탁과 아들들의 OK, 

 

한젤이는 수영을 잘했다. 멋진 폼으로 훅훅 날으듯 물을 갈랐다. 잠수도 흥미로워했다. 나는 운동을 해서 숨 참는 건 잘해, 라고 스스로를 관찰한 듯한 관점으로 칭찬하는 모습도 대견했다. 한젤이는 왠만한 것은 나에게 다 맞췄다. 나름 이벤트라며 노트북 앞에 가져다 넣고 회의 하듯이 자, 이번 여행의 규칙을 정해볼까요, 같은 퍼포먼스는 끔찍해했지만 자유한 무드 안에서 자, 옷은 옷걸이에 겁시다, 호텔 방을 깨끗하게 사용하면 기분이 엄청 좋아요! 라고 이끌면 그대로 따라 주었다.

서해 바다에서 보는 일출이라도 셋이 꼭 보고 싶어 간청했더니 너무나 심플하게 오케이, 해 준 것은 심쿵이었다. 아이가 군더더기가 없구나, 엄청난 매력이구나.

우리가 늦게 잠들어서 내일 새벽에 일어나는 게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어. 그런데 엄마는 꼭 해 뜨는 걸 보고 싶어, 같이 가 줄래?

오케이 OK!

 

퇴사 후의 선물이구나,

 

루다는 아직도 어린 나의 조각처럼 옆에 꼭 붙어 걸었다. 야식으로 라면 심부름을 다녀오는 길에, 자두맛 젤리도 사 와 이건 루다 선물 하고 줬더니 와! 엄마 최고! 한다. 마지막 두 알이 남았을 때 한 알을 내 입에 넣어주는 스위트함. 오렌지 한 알이 남았는데 내 곁에 걸어와 입에 넣어 주는 걸 젤이와 나와 루다 세 조각으로 나눠 함께 먹었다. 루다도 좋고 우리 둘도 좋고. 이런 뭐랄까 작은 장면이 너무 아름답다고 해야 하나. 나는 뭐 이런 걸 이제야 하나.

모든 게 퇴사 후 내 삶의 시간에 주인이 되면서 생긴 마음의 여유다. 가장 중요한 걸 놓치며 산 시간에 대한 보상을 시작하는 거다.

 

셋의 여행 위기의 순간 


위기도 있었다.

화려한 정크 푸드의 향연을 기대한 조식 식단에 건강한 풀들이 가득해 실망한 루다. 역시 감정 표현이 극적이라 테이블 위에 고개를 박고 그대로 멈췄다. 왜 그러는 거냐고 타박하다가 멈추고, 4살 아기 어르듯 루다야 엄마가 루다가 좋아할 만한 걸로 골라와 볼게, 먹을래? 했더니 응! 그래서 챙겨 온 것들이, 계란 프라이 완숙 두 개, 흰쌀밥, 고추장 불고기, 소고기 뭇국, 파인애플 오렌지 키위 포도 바나나 귤.... 입에 떠 먹여주고 아이 입가에 엷은 미소와 배부른 안심이 드러날 무렵, 아, 이제 엄마 좀 먹을게 기다려 줄 수 있어? 난 기다릴 수밖에 없지 엄마. 나 혼자 방 못 찾아가. 그래 그렇구나. 나의 우아한 조식은 포기하고 아들 손 잡고 방으로 향했다. 괜찮다. 아무 일도 아니다. 예전엔 이런 거에 화가 났었는데 나는 왜! 못 누려! 막 이랬었는데... 43살에 아이를 낳았어야 하나.

한젤이는 한젤이 손바닥 만한 연어부터 각종 케이크 빵 누들들 오리고기 닭고기 알아서 쓱쓱 골라 먹고 먼저 방으로 갔다. 너무 큼직한 것들을 접시에 담길래 조그씩 담아 한젤아,라고 했더니 조금이야! 하는 걸 듣고서 아, 먹는 양이 내가 아는 그 양이 아니구나 깨닫고 그대로 두었다. 돌아서면 배고프다고 돌아서면 먹을 게 없냐고 묻는 15살이었다. 언제 이렇게 큰 거야.


 

아 평생 기억하겠구나, 

 

동묘에서 쇼핑한 한젤이 잠바가 너무 멋있어서 우리 셋이 모델처럼 워킹하고 서로 와와 하고 웃은 장면, 젠가와 수영장 물 속 잠수 중의 가위바위보로 마사지 내기에서 내가 우승, 한젤이가 종아리를 루다가 어깨를 만져 주는 순간에 알았다, 아! 이 장면은 평생 기억하겠구나.

우리의 아름다운 여행은 점점 더 자주, 도전적으로 계속될 거다. 그렇게 하기로 했다. 미래는 없다. 내가 생각한 그대로가 전부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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