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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er/꿈꾸는 그림

치앙마이 워케이션, 최선을 다하지 말 것

현재의 내 모습을 버려야만
원하는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다
노자


 

치앙마이 워케이션

 
치앙마이 워케이션은 우연히 마일리지 티켓팅이 가능한 걸 확인한 순간, 아 그럼 내 사업 준비를 치앙마이에서 해볼까? 하는 찰나의 생각에서 시작됐다. 곧장 치앙마이에 7년째 거주 중인 지인에게 연락을 드렸다. 이러저러한 일을 도모하려는데 만나 주세요라고. 아 제가 다른 일정이 있는데 수요일 하루 시간이 나네요, 회신을 받고 짐을 챙겼다. 이 모든 과정에서 일정을 컨펌받고 계획을 보고하는 식의 지긋지긋한 회사스러운 일은 없다. 내 시간의 주인은 나고, 결과를 메이드 시키는 책임 역시 나에게 있을 뿐. 무한히 반복해도 모자란 퇴사 예찬.
 

치앙마이워케이션


최선을 다하지 말 것

 
치앙마이, 셋째 날. 유난하게 여행에도 일에도 최선을 다했다. 이 두 가지에 최선을 다한다는 게 뭐냐면, 조식 오픈 시간에 테이블에 앉아 마감 시간까지 노트북을 펼쳐 놓고 작고 사사로운 일들을 처리하고는, 가만히 호텔이 주는 호의를 누리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하나라도 더 경험해야 한다는 강박의 소리를 따라 낯선 길을 헤매며 걷는 거라고 할 수 있겠다. 걷기 여행을 즐기거나 목적이 있는 건 아니니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나 싶은 거다.
 
뜨겁게 내리 꽂히는 햇빛이 만든 열기에 그대로 노출된 채로 걷다 지쳐 잠시 쉬려고 들른 호텔에서, 남은 밤이 얼마 없다며 부러 새로 산 옷을 걸쳐 입고 다시 열기가 채 식기 전의 그 길을 나서는 거다. 야경 감상은 어디가 좋을까 두리번거리다가 저기 이층의 테라스 곁의 테이블이라면 충분하다 싶어 앉은 그곳에서 막 확인된 일의 한 조각에 사로잡혀, 결국 국제전화로 서로의 다른 의견을 대립시키다 기운이 쏙 빠져버리는 거다. 
 
최선을 다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괜히 날이 서서 하루를 닫았다. 지금의 내 모습을 버려야 원하는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노자의 말을 떠올린다.
 

 

현재의 모습을 버려야 원하는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다 

 
나는 화라는 감정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화를 내는 사람들 곁에 있으면 귀를 막는다. 심장이 떨리고 울상이 된다. 화는, 나름 살아온 시간 동안의 사고력 배려심을 동원해 가꾸어 놓은 내 안의 이해 영역을 단박에 뿌옇게 만든다. 무엇보다 화는 그 감정 자체에 설득당하도록 날 아프게 하는 못된 조각들을 모으게 둔다. 화가 자꾸 더 커지도록 먹잇감을 주는 것이다.
 
워케이션 중에, 화가 났었다. 처음에는 이유도 대상도 분명했는데 계속 묻다가 깨달았다. 결국 화를 내고 있는 내게 화가 났음을.
 
내 일을 시작하자고 마음먹고 제일 먼저 한 생각이 이거다.
 
"내가 변해야 한다."
 
설악산 흔들바위가 쿵 하고 떨어져도 내 그릇의 물이 밖으로 넘쳐 흐리지 않도록. 찰랑, 잔잔한 물결 정도만 일도록. 나는 훌륭한 사람은 아니지만 나란 그릇에 균열을 낼 만큼의 용기는 가졌으니까. 니체가 말한 것처럼 삶을 뒤흔들 태풍의 눈을 지니진 못했지만, 나 자신을 초라하게 여기는 태도는 질색하니까. 스스로 할 수 있단 힘을 가지고 다른 내가 돼 보자고.
 

 

치앙마이 하루 동안 생각과 감정들 

 
치앙마이에서 세 번째 밤. 하룻동안 경험한 생각과 감정을 펼쳐본다. 새벽에 눈을 뜨고 무념한 채로 스트레칭을 한 순간의 평온. 언제나처럼 날 위해 마련된 듯한 그 자리에 앉아 노랑 초롱 빨강의 신선한 음식을 가진 행복. 낯선 도시를 걸어야 한다는 조급함. 밤의 무드를 잃은 화와 자책. 그리고, 다시 나의 가능성을 믿고 다른 내가 되어보자는 다짐. 큰 아들이 열다섯 살인데 아직도 다짐하는 그대로의 나를 끌어안는 어쩔 수 없음의 애틋함까지. 치앙마이 워케이션에서 최선을 다하면 이렇게 된다.
 
당신은 최선을 다하지 말고 누리고 즐기길.
지금 그대로의 당신 모습을 인정하고 사랑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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