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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UTIFUL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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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부터 비를 좋아했다. 비가 오면 우선 반가운 마음인데 곁의 누군가 인상을 찌푸리면 괜히 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비를 맞으면 부자가 된다거나 비를 맞으면 머리숱이 많아진다거나 비를 맞으면 아픈 곳이 낫는다는 속설이 필요하겠단 생각도 했다. 소문을 퍼트릴 방법도 구생했고. 어릴때부터 장대비를 맞았다. 교복이 흠뻑 젖을 때까지 걷고 또 걷고 그 눅눅하고 찝찝함을 기꺼이 받았다. 젖은 불편함으로 아픈 마음을 달랬던 기억이다. 나의 사춘기를 비로 견뎠다.
꽃 피우기로 해 ​ 2016. 2. 7. 기대된다 어떤 일들이 기다릴지 더 깊게 단단하게 내린 뿌리로 잦은 바람도 견디고 소담한 꽃도 피우자 ​
실패를 걷는다 ​ 누리는 많은 것이 있음을 잊고 살다가 하나 두 개 혹은 거의 대부분을 잃어버리면 비로소 안다. 고마웠다는 걸. 시한부처럼 한 달을 살았다. 기꺼운 마음으로 참여하지 못한 순간마저 마치 미래가 된 내가 과거의 날 바라보듯 아련한 기분이 돼 따뜻한 태도로 임했다.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기에. 모든 순간 삶의 마지막을 염두한다면 지금보다 더 따뜻할 수 있겠지. 처한 상황마다 다른 자세를 취하는 나에게 실망하면서도 지금의 '잃는' 경험이 약이 되겠다 싶어 그냥 둔다. 어떤 경험도 그것이 실패라면 더 값지다. 나는 지금 실패를 걷고 있다.
봄타기려니 2015. 3 꽃은 피지만 여전히 스산한 바람이 부네 싶더니... 금새 등줄기에 땀이 찬다. 수년 전부터 입버릇처럼 봄이 사라지려나 했는데 결국 그리 되나보다. 아마도 머지않아 내 친구 보미를 '봄'이라 부를 때에만 '봄' 소리를 내게 되려나. 꼭 그래서 만이 아니라 ... 허한 요즘이다.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은 상태가 길어지고 있다. 지금 여기의 내가 밉다. 돌아보면 어디서든 반복되는 내 한계다. 나에게서 답을 찾자며 들쑤시다가 이내 자존감이 바닥나는 악순환. 도망치거나 모른척 뭉개다가 결국... 어떻게 되더라. 어젠 문득, 오늘의 아픔이 고민과 노력 없이 허송세월 보낸 소녀 시절에 대한 대가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게 맞다면 누군 빠르게 누군 느리겨 겪을 터 크게 상심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였..
봄밤 2013.12 봄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靈感)이여 김수영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2013. 8. 시든다고나 할까 피었던 꽃이 기운이 없어지고 꽃잎도 하나하나 떨어지고 이파리만 남은 것 같은 기분... 그래 그거야 이제 앞으로는 예쁘다는 말,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 조금 시들어버린 느낌이 든다 인생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들고 싶다 라니...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괜찮은 편이잖아 주택대출도 곧 끝나고 남편 월급도 그럭저럭 아이도 귀엽고, 모두가 이런 걸 행복이라고 말하는데 이렇게 좋은 날씨에도 놀러가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하게 된지 얼마나 됐나 이제, 평생동안 데이트 약속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 같은 건 없겠지 난, 이제 사랑을 해서도 안되고 다른 남자와 자서도 안된다 무엇을 위해 일하는 거지 내 월급은 얼마 되지도 않을 거고 집안일은 똑같이 해야 하고 하고..
빗소리 아래서 너에게 2013. 9. 잘 지내냐는 짧은 안부가 왜그리 어려웠을까. 우리 연락하지 않은 게 벌써 열흘이 지났지 아마. 하루가 멀다고 사는 얘기를 나눈 우린데. 그 미묘한 날의 어긋난 감정을 서로 아닌 척 하기 위함이었을까. 서로를 찾지 않는 걸로 불편한 마음을 나름 표현한 걸까. 허약한 우정인가 싶어 작아질 무렵 가을비가 내렸다. 빗소리 아래서 너의 예민하고 감각적인 플레이리스트가 고픈 건 당연한 일. 나의 푸념에 박수를 치며 맞장구를 쳐줄 네 소리도 그립더라. "잘 지내?" 대답이 올 때까지의 찰나의 공백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더니... 늦었다. "초기라 일부러 말하지 않았는데 둘째 유산했어.... " 아이와의 이별 얘기를 담담히 전하는 네게 난 친구란 이름의 죄인이구나. 거울을 바라볼 수가 없다. 고개 들 ..
당장 행복하기로 2013. 9. 그와 함께 걷는다. 오랫만이다. 두 아이의 엄마 당신의 아내 ... 서른 넷에 이룬 평균값의 내 삶을 긍정할 때 편안하다. 여기가 아니라면 ... 같은 가정법은 허황하다. 나와 내 주변의 전부를 좋아하기로 한다. 가을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