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Film Scene

(112)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 죽었어도 10번은 더 죽었겠다." " 그대로 앉아서 다시 한 번 보고 싶어." 의 엔딩 크레딧이 끝날무렵 짧은 감상평을 나눴다. 156분 동안 불안하게 다리를 떨던 그와 잦은 탄성을 내지른 나의 감흥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둔 듯 멀었다. 영화를 복수극에 방점을 찍어 봤다면 빈약한 서사에 불만족스러울 것이고, 곰과 사투를 벌이는 스펙타클한 장면에 매료됐다면 짜릿한 쾌감의 팝콘무비로 만족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나와 같이, 한 인간의 빼어난 세계관에 넋을 잃고 휘청일 것이다. 영화는 아들의 죽음을 목격한 아비(글래스)가 아들을 죽인 철천지 원수를 복수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살아 남는다는 줄거리다. 복수극이란 단순한 줄거리가 영화의 약점으로 꼽히는데 난 좀 다르게 봤다. 이냐리투 감독의 전략일지도 모..
행복의 기원 2006. London 버트런드 러셀도 경계하라는 '쾌락'을 인간의 진화에 필요한 유전적 요소라고 얘기하는 을 손에 잡기 무섭게 읽어 내렸다. 행복을 좀 다르게 보자는 관점이 좋았고 순식간에 빨려들었다. "익숙한 철학의 안경을 벗고, 진화론적인 렌즈로 행복(쾌감)의 본질을 좀 더 깊게 들여다 보게 되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 행복은 사회적 동물에게 필요했던 생존 장치이다." 학생 시절 학교 담을 넘어 친구네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 돌아오곤 했다. 치마자락을 휘날리며 담벽락을 뛰어 내리는 동시에 적발돼 혼쭐이 나는 줄 뻔히 알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왜냐고?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낄낄 '행복'했으니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매 순간마다 겁이 없고 어떤 대가보다는 즐거움을 따른 그간의 나의 행보에 '참 잘..
WIlD 2014, Director: Jean-Marc Vallée 고통을 이겨 낸 누군가의 새 삶은 얼마나 (부러울만큼) 아름다운가. 이만하길 다행이라며 안심하다가도 완전히 다른 '나'로 극복되고자 하는 욕망은 꽁꽁 숨었다 간혹 고개를 내미는데 영화 를 보면서 그랬다. 세상 단 하나 밖에 없는 오직 내 편인 엄마를 잃고, 마약과 섹스로 쩌든 절망 속의 셰릴. 결국 그 한계점에서 내린 결정 총 4,286Km인 하이킹 코스 PCT(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인). 그리고 94일간 이어지는 고독. 는 영화 문법 밖에서 그저 길의 태양 아래 선 그녀의 모습을 천천히 따라 간다. 그녀가 인적 드믄 외딴 길을 걸을 때마다 후회로 점철된 '와일드'한 과거가 기억에 소환된다. 그리고 엄마. 엄마의 흥얼거림, 목소리, 눈빛과 그 모든..
그렇게 아버지를 된다 그렇게 아버지가 되는 영화라지만, 어머니를 이리도 유약하게 표현할 수 있나 싶어 몰입하지 못했다. 출생 당시 병원에서 아이가 뒤바꿨단 사실을 6년이 지난 후에 알게 된 상황. 엄마는 왜 진작 알아채지 못했을까 자책감에 사로잡혀 있을 뿐이다. 그 어떤 중요한 발언이나 결정은 남편의 몫이다. (배꼽이 빠져라 웃겨 주거나 고장 난 장남감을 고쳐주는 일도 저쪽 아빠가 한다.) 깜빡 조는 사이 사라진 아이를 찾아 헤맨다거나 늦은 저녁거리를 챙기는 장면은 기시감이 어려 진부하다. 감독이 옳은 세계관으로 가족이란 이름을 재해석 했다 한들 지금 6살 아이를 키우는 나의 마음을 뒤흔들진 못했다. 고레에다의 영화들은 내 삶에서 참으로 소중한데 에 동의할 수 없음에 가라앉는다.
만약 나라면... <더 헌트> 더 헌트, 2012 만약에 내가 루카스라면 테오라면 클라라의 엄마라면. 모든 만약에가 성립되니 이를 어떻하나. 영화인데, 적어도 악인 하나쯤 등장해야 속 시원히 끝날 수 있을텐데. 아이의 작은 거짓말에 처참히 부숴지는 한 남자의 시간을 답답해 하며 지켜봐야 하는 건 고역이다. 모든 것이 이치에 맞게 흐르지는 않다는 것을 우리의 판단이 진심일 지언정 틀릴 수 있다는 것을 고로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는 말해 주는 것 같다. "우리는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다' 라고 믿는다. 그래서 쉽게 '유죄추정의원칙'에 몸을 싣는다. '아니땐 굴뚝에 연기나랴'는 속담은 유죄추정의원칙이 대체로 옮다고 우리를 오도한다는 점에서 혐오스럽다." - 신형철 리뷰 중에 -
말하는 건축가 "나이가 들고 늙을수록 철학 공부를 해야 되는 거 같아. 철학적 이여야 된다, 그 말은 죽는 준비를 단단히 해야 된다... 옛것을 돌아보고 회상하고 추억하고 눈물 흘리는 것이 아니라 삶이란 게 뭔지 왜 사는지 세상이 뭔지 나는 누군지 어떻게 살았는지 가족은 뭔지 친구는 도시는 건축은 뭔지 근원적인 문제들을 곱씹어 보고 생각하고 그러면서 성숙한 다음에 죽는 게 좋겠다... 한마디로 위엄이 있어야 돼. 밝은 눈빛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죽음과 마주하는 그런 인간이 되고 싶다..." - 말하는 건축가, 2012
The Best Exotic Marigold Hotel The Best Exotic Marigold Hotel , 2012 여행을 꿈꾸는 이들의 로망, 인도를 배경으로 한 것 말고도 영화 의 강점은 주디 덴치, 빌 나이 같은 영국 명배우들의 어깨에 힘을 쭉 뺀 명품 연기를 감상하는 데 있다. 그들은 마치 황혼의 러브엑추얼리의 주인공처럼 각자의 삶 속에서 충분한 이유 안고 공항에 모인다. 인생의 어쩌면 마지막이 될 새로운 시작을 위해. 일곱 명의 영국 노인들이 인도라는 낯선 땅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적응해 가는 모습을 보이는 게 영화의 전부다. 일흔을 넘긴 배우들은 이 간명한 이야기 속에서 인도를 활보하는 것만으로 스크린에 생기를 불어 넣는다. 그들의 걸음걸음에 우리의 미래를 슬쩍 투영해 본다면, 늙는다는 피할 수도 유쾌하지도 않은 주제에 함빡 미소 지을 수..
Blue Valentine 2010 공교롭게도 미쉘 윌리엄스가 주연한 두 편의 영화 (2012)와 (2010)은 우리가 알던 '사랑'이 결혼이란 울타리 안에서 얼마나 분분히 흩어지는지를 직시한다. 고민 안에 '사랑'만 있고 결혼은 없던 그 시절에, 만약 이 두 편의 영화를 만났다면 과연 같은 결정을 내렸을까 하는 자문은 지금의 결혼 생활이 불만족스럽다거나 불완전하단 걸 의미하는 게 아니다. 다만 가슴 안에 붉게 타던 그 '사랑'을 떠나보냈다는 어쩔 수 없는 상실감과, 더 이상 낯선 '사랑'의 주인공이 될 수 없음을 인정하는 이해의 과정이다. 의 주인공 딘(라이언 고슬링)과 신디(미쉘 윌리엄스) 부부가 키우던 개가 죽은 채 발견된 날, 서럽게 울던 딘은 불현듯 제안한다. 여기를 벗어나 추억이 깃든 그곳에서 그때처럼 사랑을 나누자고. 신디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