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알러지 (477) 썸네일형 리스트형 실패를 걷는다 누리는 많은 것이 있음을 잊고 살다가 하나 두 개 혹은 거의 대부분을 잃어버리면 비로소 안다. 고마웠다는 걸. 시한부처럼 한 달을 살았다. 기꺼운 마음으로 참여하지 못한 순간마저 마치 미래가 된 내가 과거의 날 바라보듯 아련한 기분이 돼 따뜻한 태도로 임했다.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기에. 모든 순간 삶의 마지막을 염두한다면 지금보다 더 따뜻할 수 있겠지. 처한 상황마다 다른 자세를 취하는 나에게 실망하면서도 지금의 '잃는' 경험이 약이 되겠다 싶어 그냥 둔다. 어떤 경험도 그것이 실패라면 더 값지다. 나는 지금 실패를 걷고 있다.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 죽었어도 10번은 더 죽었겠다." " 그대로 앉아서 다시 한 번 보고 싶어." 의 엔딩 크레딧이 끝날무렵 짧은 감상평을 나눴다. 156분 동안 불안하게 다리를 떨던 그와 잦은 탄성을 내지른 나의 감흥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둔 듯 멀었다. 영화를 복수극에 방점을 찍어 봤다면 빈약한 서사에 불만족스러울 것이고, 곰과 사투를 벌이는 스펙타클한 장면에 매료됐다면 짜릿한 쾌감의 팝콘무비로 만족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나와 같이, 한 인간의 빼어난 세계관에 넋을 잃고 휘청일 것이다. 영화는 아들의 죽음을 목격한 아비(글래스)가 아들을 죽인 철천지 원수를 복수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살아 남는다는 줄거리다. 복수극이란 단순한 줄거리가 영화의 약점으로 꼽히는데 난 좀 다르게 봤다. 이냐리투 감독의 전략일지도 모.. 버림과 키움 "10년. 저는 많은 것을 잃고 또 많은 것을 버렸습니다. 버린다는 것은 아무래도 조금은 서운한 일입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버린다는 것은 상추를 솎아내는, 더 큰 것을 키우는 손길이기도 할 것입니다." 한라산의 감동 '겨울왕국'을 보았다 2016년 1월 15일. Real ‘겨울왕국’을 보았다. 설경을 기대했지만 기대 이상일 줄이야. 한라산 윗세오름까지는 두 번이 전부인데 평소 산과 친하지 않은 내 눈에도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해 더 자주 오겠다고 다짐하게 되더라. 연례 행사가 되면 좋겠고 아이들이 좀 더 크면 함께 자주 걷고 싶다. 문득 산을 잘 모르는 주제지만, 산을 타는 일이란 기꺼이 고통을 견디기 위함이 아닐까, 고통에 익숙해 지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을 좋아하기란 스스로 낮추어 ‘겸손’하지 않으면 어렵겠다고. 오르막을 걷다가 걷다가 보면 한없이 작고 나약한 나와 마주하게 되는데 결국 날 이끌고 가는 건 정신과 의지이지 않나. 초라한 네 모습을 보고 이 고통을 감내하라는 산의.. 새겨듣는 일 흔치않은 일 2015. 9. London 새겨 드는 일이 흔치 않아 졌다. 그건 내 안의 '잣대'가 덩치를 키워서 일 거다. 들리는 얘기들에게 넌 틀려, 넌 맞고, 넌 집어치울래 따위의 판단이 쏟아진다. 내 가슴을 때리는 말과 치침이 되는 가르침... 방향타가 되어줄 조언 하나 구하기 어렵다. 모두 다 나 때문이다. '내가 틀렸구나. 맞다고 생각했는데 잘못 알았구나. 저 사람 실속없는 줄 알았더니 나보다 더 나은 분이구나. 나도 몰랐던 걸 알고 있구나.' 굳건하다고 믿은 판단, 결정들이 산산이 조각 나는 순간이 잦아져야 한다. 자꾸 고개를 치켜 드는 내 안의 '에고'가 고개를 숙이도록. 나란 인간이 너와 닿을 만큼 확장될 유일한 길일 지도 모른다. 이제라도 훈련해 놓지 않으면 꼰대가 돼 주변인을 괴롭히고 더 나이가 .. 배탈 울 아들... 한번씩 배가 아프면 오열과 구토로 이어진다. 아마 3-4살때부터 수시로 그랬다. 대신 아파줄 수 없으니 답답하고 안타깝다가 징징 거리면 몸도 힘들고 때론 화도 난다. 어제도 아프다길래 부리나케 갔더니 울고 있다. 얼른 안고 집으로 가는데 달리는 차 안에서 오열하다 구토했다. 그리곤 소강상태. 다행이다 싶었는데 새벽 4시경에 깨 다시 아프다며 울었다. 오랜만에 재미난 꿈을 꾸고 있던 차라 아쉬웠지만 일어나 간호했다. 아이란 특히 아플 때 고작 나란 존재를 세상의 전부 쯤으로 여긴다. 엄마 엄마 목놓아 쉼 없이 부른다. 겨우 나인데... 널 낳아서 세상의 전부가 되는 경험을 한다는 생각이 이어지더라. 난 왜 이리 엄마인 내 모습에 자신이 없는걸까. 복잡한 마음에도 묵직한 책임감이 올라와 따뜻한.. 우리는 방학 2015. 여름 이제야 날짜를 꼽아본다. 이 주쯤 됐을까. 그리움엔 몸이 먼저 반응한다. 이 주. 기다림의 한계치. 두 밤만 지나면 아들들이 집으로 돌아온다. 혼자라 귀했을 일요일날에 기꺼이 청소를 감행했다. 서걱거리는 발바닥의 느낌도 싫었지만 무엇보다 아들들에게 뽀송한 잠자리를 마련해 주고픈 엄마의 마음으로. 기꺼이. 설거지 한 번, 청소기 두 번, 빨래는 네 번 돌렸다. 그 중 두 번이 이불 커버였다. 그 외 각종 서랍 옷장 주방 곳곳 야무지게 진행 된 대청소였다. 폭염이었다. 우리집 거실엔 에어컨이 없다. 땀을 ‘비오듯’ 흘렸다란 진부한 표현을 굳이 쓰고 싶지 않지만 이보다 더 정확할 순 없다. 그러니 기꺼운 마음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문득 이 '기꺼운' 상태가 얼마나 값진가에 대해서 생.. 잊혀진 것처럼 지내고 있었다 잊혔을리 없다. 기대도 않는다. 다만 요즘 잠잠했다. 마음으로 전하는 침묵의 안부도 꿈속의 조우도 뜸했다. 잊혀진 것처럼 잊은 채 지냈다. 충분한 기억으로 남았음이 얼마나 다행이냐는, 여행집의 한 구절을 읽다 그만 또 떠올렸다. 그렇게 밤을 지새면 안 될 것 같아 애써 뒤척여 애써 선 잠에 들다 깼다. 평소와는 다르게 무심히 켠 라디오에서 함께 듣던 노래가 흘렀다. 겸험의 '기억'이란 존재보다 강하다. 더 나은 나였다면 그만큼 아픈 엔딩은 피했을텐데. 그리움과 아쉬움은 추억과 같은 말. 절절했던 그 시간의 보상은 기억 뿐일까. 이전 1 ··· 17 18 19 20 21 22 23 ··· 6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