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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알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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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 김밥 2014. 6. Newyork Green Market 채식 김밥을 싸보았다. 아가 유치원 선생님 파릇파릇의 청초함의 비결은 채식이었나보다. 계란도 먹지 않는다니 비건에 가까운 강경파다. 늦은 밤 부랴부랴 멸치는 드시는지 여쭙고 다행히 아주 잘 먹는다는 답을 들은 터. 그녀를 위해, 그녀의 김밥에는 당근 시금치 단무지와 함께 청량고추와 칼칼하게 볶아진 멸치를 다져 넣었다. 그 맛이 일품이다. 덕분에 나 역시 채식 김밥으로 점심을 떼웠다. 이게 실은 별 게 아닌데, 누군가를 위해 내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모아 만들어 건네니 기쁨이 된다. 그저 도시락일 뿐인데 말이다. 아침 잠시간 두어시간 쪼개 김밥 몇줄 더 마는 일을 경험할 때마다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만족감이 오른다. (이 말은 곧 평소에 타인에게 무심 했..
아픈 후에 2015. 4 열이 좀 떨어지니 살 것 같지만 어젯밤 오늘 아침까지 죽을 고비를 맞은 것처럼 괴로웠다. 이러다 정말 죽는 건 아닌가 눈이 머는 건 아닌가 앞뒤 안 맞는 생각에 한번 발이 빠지니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39.3도. 고열이 밤새 날 덮쳤고 머리 몸 목의 각 부위가 분리돼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을 때의 두려움을 느꼈다. 아파 봐야 건강이 중요하단 걸 새삼 느낀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얼마나 불만족스러워했는지. 아파봐야 그 역시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안다. 이 또한 가르침인데 이 또한 곧 잊혀진다. 다만, 우리 아이들 품에 안고 빙빙 돌아 침을 잔뜩 묻혀가며 뽀뽀해야 직성이 풀리는데 멀찍이서 바라만 보자니 속상하다. 또 센치해지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다. 우리 엄마는 내가 '..
WIlD 2014, Director: Jean-Marc Vallée 고통을 이겨 낸 누군가의 새 삶은 얼마나 (부러울만큼) 아름다운가. 이만하길 다행이라며 안심하다가도 완전히 다른 '나'로 극복되고자 하는 욕망은 꽁꽁 숨었다 간혹 고개를 내미는데 영화 를 보면서 그랬다. 세상 단 하나 밖에 없는 오직 내 편인 엄마를 잃고, 마약과 섹스로 쩌든 절망 속의 셰릴. 결국 그 한계점에서 내린 결정 총 4,286Km인 하이킹 코스 PCT(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인). 그리고 94일간 이어지는 고독. 는 영화 문법 밖에서 그저 길의 태양 아래 선 그녀의 모습을 천천히 따라 간다. 그녀가 인적 드믄 외딴 길을 걸을 때마다 후회로 점철된 '와일드'한 과거가 기억에 소환된다. 그리고 엄마. 엄마의 흥얼거림, 목소리, 눈빛과 그 모든..
제주 안개 ​ 옅은 바람에 실려 슬몃 닿은 제주에서 어떤 오름을 삼키는 안개를 보았다. 결국 나조차 지워졌을 시간.
힘내세요 유민아빠 어처구니없는 요즘. 무너진 하늘 아래 겨우 버티고 선 그분들과 유민아빠 걱정에 길을 나섰다. 무심코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면 마른 수건에 눈물을 훔치는 이들이 많았다. 집회 현장이 익수한 동네 언니들은 돗자리에 청도복숭아까지 준비가 철저했다. 아이들은 흥에 겹다 지쳤고 난 자주 먹먹했다. 뙤약볕 아래서 힘내자는 구호를 소리치는 일은 낭만이 아니다. 나은 오늘도, 나이질 내일도 모두 행동하는 이들에게 지는 빚임을 이제야 안다.
smile 2014. 1
그렇게 아버지를 된다 그렇게 아버지가 되는 영화라지만, 어머니를 이리도 유약하게 표현할 수 있나 싶어 몰입하지 못했다. 출생 당시 병원에서 아이가 뒤바꿨단 사실을 6년이 지난 후에 알게 된 상황. 엄마는 왜 진작 알아채지 못했을까 자책감에 사로잡혀 있을 뿐이다. 그 어떤 중요한 발언이나 결정은 남편의 몫이다. (배꼽이 빠져라 웃겨 주거나 고장 난 장남감을 고쳐주는 일도 저쪽 아빠가 한다.) 깜빡 조는 사이 사라진 아이를 찾아 헤맨다거나 늦은 저녁거리를 챙기는 장면은 기시감이 어려 진부하다. 감독이 옳은 세계관으로 가족이란 이름을 재해석 했다 한들 지금 6살 아이를 키우는 나의 마음을 뒤흔들진 못했다. 고레에다의 영화들은 내 삶에서 참으로 소중한데 에 동의할 수 없음에 가라앉는다.
소박한 바람 2014. 1. 2. 한라산 윗세오름 제주 한라산 등반으로 2014년을 시작했다. 두 아들의 엄마, 남편의 아내의 자리에서 잠시 떠난 쉼. 언제나처럼 찰나의 휴식 속의 내 모습이 가장 나 답더라. 언제쯤 일상 속의 나를 '나'로서 완전히 인정할 수 있을까. 산을 오를 때의 기분이 그토록 상쾌할 지 예상 못했다. 걷고 또 걷는 일. 몸을 최우선에 두고 걸음의 보폭과 훕후후 호흡을 유지하도록 머리가 지지해줘야만 가능한 일. 가슴에 꾹꾹 눌러 박은 '의지‘를 불태우는 일. 멋진 경험이었다. 의지의 불씨만 살려 놓는다면 자주 오르내릴 것이다. 지금이 7월이든 11월이든 상관없을 만큼 이번 새해에게 무심하다. 메마른 탓일까. 긍정의 기운인지 그 반대인지 복잡한 감정으로 시작하는 올해는 어떨지. 딱히 어떤 변화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