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애플알러지

(479)
엄마 이야기 일 봐주는 아주머니가 아침 준비를 서두르는 동안 정희는 유연한 손놀림으로 피아노 연습에 한창이었다. 정희의 꿈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돼 전 세계를 누비며 공연하는 것이었다. 국민학교, 중학교 시절 내내 반장 자리를 놓쳐본 적이 없는 모범생 정희는 부모님에게 늘 자랑스런 자식이었다. 결혼 8년 만에 얻은 귀한 딸이었기에 부모님의 큰 사랑과 관심을 받았다. 사시사철 원두커피 향이 그윽했던 부유한 집안의 맏딸로 태어나 금이야 옥이야 어여쁘게 자란 정희가 바로 나의 엄마다. 동네 피아노 선생님으로 이름 날린 엄마지만... 엄마에게 불운이 닥친 건 그리 멀지 않은, 그러니까 엄마 나이 열여섯 살 때였다. 할아버지가 고혈압으로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 역시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엄마는 말할 수 ..
독립영화와 함께 한 10년. 인디스토리 10주년을 축하합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인디스토리가 11월 11일로 열 돌을 맞는다. 2년 전 입사 당시부터 나는 이상하게 앞으로 다가올 인디스토리의 10살 되는 날을 고대 했었다. 이유는 독립영화의 배급을 위해 한길을 묵묵히 걸어온 그들의 10년이 위대하기 때문이고, 그런 그들과 뜻깊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기 때문이다. 2008년은 ‘인디스토리’라는 이름을 걸고 독립영화의 중심에 선 인디스토리가 어느덧 1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한국영화계 변방의 작은 영토에서 한결 같은 모습으로 묵묵히 영토를 지키며, 성장해 온 탓에 혹자에게는 여전히 생소하고 낯선 작은 영화 제작/배급사의 이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척박한 독립영화의 토양에서 변치 않는 이름으로 10년을 자생한 영화 제작/배급사가 또 얼마나 될..
최진실과 바스키아.. 예술가의 짧은 생 최진실의 자살 소식을 듣고 충격에 빠진 이가 비단 나 뿐일까. 90년대 CF 한편으로 스타덤에 올라 대한민국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해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던 톱스타이자 언제나 옆집 언니 같았던 그녀다. 최근 출연한 드라마의 연속 히트로 줌마렐라 신드롬을 일으켰지만, 숨기고 싶었을 폭력과 외도로 얼룩진 결혼생활과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 얽힌 사연들은 최근까지도 매스컴의 단골 메뉴였다. 대중의 대단한 사랑을 받음과 동시에 꼭 그만큼의 루머와 악의적인 덧글을 얻어야 했던 그녀는 예상처럼 수년간 신경안정제를 복용하며 우울증을 견뎠다. 그래도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큼 괴로우랴 싶었거늘.. 두 아이의 엄마로 웬만한 일은 씩씩하게 버텨내길 바랐거늘.. 그녀는 대중의 마음을 저버리고 그렇게 떠났다. “유명해 진다는 건 ..
프렌치 키스. 1995 잘자라고 말해주세요 그리고 키스해주세요 나를 꼭 껴안고 날 그리워할 거라고 말해주세요 내가 외롭고 우울하게 될 때 말이에요 나를 꿈꾸세요 나의 작은 꿈을 프렌치 키스 OST 'Dream a little dream of me' 중에서.. 파리의 에펠탑과 불빛에 출렁이는 까만 밤의 세느강. 프렌치 키스를 나누는 퐁네프의 연인들과 몽마르트 언덕의 가난하지만 행복한 예술가. 프로방스의 태양 아래 드넓게 펼쳐진 포도밭과 그곳을 고향으로 둔 달콤쌉싸름한 수천 가지의 와인. ‘프랑스’란 이름과 함께 떠오르는 로맨틱한것들이다. 영화 를 보노라면 무작정 닿고 싶은 환상, '프랑스'를 만끽할 수 있다. 영화는 에펠탑과 개선문 그리고 샹제리제거리와 루브르 박물관을 배경삼아 위의 노래 가사처럼 프랑스 남자와 미국여자의 운명적..
낙엽을 닮은 남자, 오다기리죠를 만나다 작년 여름쯤..오다기리죠의 흔들리는 눈빛을 보았다. 유난히 외로워 보이는 그의 모습이 마치 생을 다한 늦가을의 낙엽과 닮았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어제, 오다기리죠를 만나러 갔다. (영화 의 상영 전 무대인사, 압구정 CGV) 오다기리죠는 내가 기대한 딱 그 모습 그대로 무대에 올랐다. “무대인사가 네 번째라 점점 할말이 없어진다.” 라고 말문을 연 그. 큰 키에 비해 작은 얼굴, 긴팔과 다리, 넓은 어깨와 긴 손가락, 깊게 눌러쓴 모자로 어렴풋이 보이는 단 한번의 큰 웃음, 수많은 카메라를 직접 응시하지 못해 방황하는 눈동자…
13회 부산국제영화제 강.력.추.천 다큐멘터리 하늘이 높고 푸르다. 상쾌한 바람이 코끝을 맴돌고 따뜻한 햇살이 그림자를 늘씬하게 뽑아낸다. 영화보기 좋은 계절.. 가을이 왔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부산국제영화제가 우리를 찾는다. 올해는 10월 2일부터 10일까지 해운대와 남포동 일대에서 영화의 향연이 펼쳐진다. 부산국제영화제는 회를 거듭할수록 그 규모가 거대해지고 있다. 그만큼 영화팬들의 기대도 높아지고 동시에 실망의 목소리도 더해가는 것이 사실이지만, 언제나 설레고 기다려지는 국내 최대의 영화 '축제'임은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올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으로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 하나 있는데, 바로 와이드 앵글 부문에 초청된 이다. 는 평생동안 땅을 지키며 살아온 팔순의 농부와 이것저것 불만을 터트리면서도 한평생 함께해 온 할머니 그리고..
두 눈으로 확인한 작은 영화의 힘 두 눈으로 확인한 작은 영화의 힘, 큰 기대 없이 찾은 극장에서 신선한 소재에 잘 짜인 이야기의 기분 좋은 영화를 만났다. 비록 여자 배우들의 유약한 캐릭터가 아쉽지만, 소지섭과 강지환 이라는 두 배우의 가능성 그 이상을 지켜 볼 수 있었고 조연의 맛깔스러운 연기로 연신 어깨를 들썩이며 키득거릴 수 있었던 영화, 바로 . 6억 예산으로 만들어진 저예산 영화가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사실이 작품의 완성도를 어느 정도 짐작하게 해줬지만, 실제 확인한 는 나름 스타급인 두 배우의 몸을 아끼지 않은 연기와 신인 감독 특유의 섬세하고 꼼꼼한 연출이 잘 버무려진 웰 메이드 영화가 맞았다. 이 영화가 마음을 사로잡은 가장 큰 이유는 실제 깡패인 ‘이강패’ 와 깡패 같은 배우 ‘장수타’가 우연한 인연으로 얽히고, ..
꿈 좇는 평범한 청춘 담은 <우린 액션배우다> 2004년 서울액션스쿨 8기생을 모집하기 위해 열린 오디션 현장. 오직 액션배우가 되겠다는 한 가지 꿈을 위해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드러낼 건 근육밖에 없는 미용사 출신 권투선수, 우스꽝스럽게 말타는 흉내를 낼 뿐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백수건달, 발차기는 물론 몸으로 하는 모든 게 어색하지만 잘 생겨서 점수를 딴 꽃미남, 그리고 하릴없이 하루 다섯 편씩 비디오만 보다가 주성치 같은 코믹액션영화 감독이 되고자 '액션'을 직접 배우기 위해 오디션을 보러온 정병길 감독까지. 비주류 인생에서도 맨 가장자리쯤에 있을 법한 그렇고 그런 남자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당시 오디션의 심사위원이었던 김원중 감독은 그날을 이렇게 회상했다. "8기 오디션 볼 때 아주 꼴통들 많았죠." 사실 나는 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