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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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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Hangel 다섯살 한젤군이 찍어줬다. 장소가 어디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제주 숙소인거 같기도 하고. 사진 잘 찍는 남자로 자라주렴. 너에게 한 평생 찍히고 싶다.
다섯살 2012. 1. 다섯 살. 말 수가 늘면서 뭐랄까 귀염이 덜해진 느낌이다. 흐뭇이 바라보는 나에게 “엄마 다시 부엌으로 가세요” 라거나 목욕이 끝날 무렵 “엄마 이제 나가 있어요” 식으로 엄마 떼어내기도 부쩍 늘었다. 밤 10시면 까무룩 잠들던게 11시가 훌쩍 넘어서까지 쌩쌩하다. 난 자고 싶은데 지는 놀고 싶으니 밤마다 티격태격 한바탕이다. 아기 티 벗는 모습이 반갑기도 한데 한편 허전하다. 정말로 방문을 걸어 잠그고 본체만체 할 날이 머지않은걸까.
당신 종종 즐겨먹던 사골국이 먹고 싶어 아빠에게 전화를 하고야 말았다. 결혼해 아들까지 둔 내가, 마치 수험생이나 된 듯이 아빠 족탕이 먹고 싶어요. 라고 했다. 끓이는 데만 족히 하루는 걸리는 번거로운 작업이라는 걸 뻔히 알고 있었다. 직접 두 팔 걷어 해낼 엄두는 나지 않았다. 하루 종일 핏물을 빼고도 한번 빠르게 끓여 이물질을 제거하고 깨끗이 씻어 다시 고아내는 긴긴 여정. 정성스런 마음이 바탕이 돼야 깔끔하고 깊은 맛으로 완성되는될 거다. 천성이 깔끔한 아빠표 국은 그래서 언제나 최고였다. 아빠는 손수 간장양념장을 만들고 국과 밥도 수북이 퍼 나를 식탁에 앉혔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내 두 발바닥을 쓱쓱 주무르고 계셨다. 밥 먹는 서른 넘은 딸의 발을. 아빠와는 사춘기에 접어든 중학생이 된 뒤로 급격히 ..
2011. 8. 보고 있어도 보고싶은. 사랑하는 둘.
새삼스러웠다. 8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한 반이었던 나의 친구. 13살, 6학년 때 한 번 더 같은 반이 되고 서 친해진. 한 학년에 5반이던가. 자그마하고 음침했던 여자중학교에서 주먹만한 틈도 봉한 채 꼭 붙어 다니던 곤. 어느 날. 마치 합의라도 한듯 소원해진. 소원해지기에 속력이 붙자 무얼 한다더라 란 얘기에도 귀 기울여지지 않았던. 그 친구가 그렇게 간절한 날이 엊그제였단 사실이 말이다. 문득. 우리의 15살이 그리웠다. 그때 우리가 만든 완전한 세상. 이라고 믿었던 그 불완전한 세상이 가슴 안에서 생생히 움직이는 천국으로 기억됐다. 그때로 다시 간다면, 모든 선택을 새롭게 할 수 있다면 지금의 우리 모습과 많이 다를까, 그럼에도 변함없을까 궁금했다. 너는 어떠니. 묻고 싶었던 거 같다. 완..
얼굴색 2011. 5. 31 정말이지 계절이 두 번이나 바뀌고서야 조우한 달팽이 사진관 친구들. 달팽이 사진 두걸음반 2기의 전시 오픈일로, 유림의 '엄마' 작업이 첫 공개된 날이면서, 소주 세 잔이면 전사하는 민수가 작정하고 소맥을 달린, 민선과 창휘의 급 만남에 모두들 흥미진진했던 즐거웠던 날. 얼굴색이 모두 똑같아... 마음마저도 같았길.
그 날 오후 2011. 5. 경복궁 역 허둥지둥 버스정류장으로 달린다. 매일 반복되는 조바심. 토끼반 선생님이 퇴근하는 6시가 되면 아기는 당직 선생님이 계신 1층으로 이동한다. 낯선 공간으로 향하는 길목에서부터 울기 시작한 아기가 품에 안겨서까지 한참을 흐느끼는 게 안타까워 서두르는 오후는 일상이 됐다. 길가 사람들 팔꿈치를 툭툭 쳐가며 냅다 뛰는데, 문득 깍지 낀 두 손이 시야에 들어온다. 여자의 손이다. 그것도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 두 분의. 오랫만에 아름다운 장면이 눈 앞에 있다. 애기 좀 울더라도, 늦자고 마음 먹고 뒤따르기로 한다. 삐뚤빼뚤 따라 걸으며 우정과 사랑이 범벅됐을 당신의 추억을 상상해본다. 붐비는 인도를 지나 좁다란 시장 초입에서 방향을 틀어 간판 없는 가게 안으로 들어서신 두 분의 뒷모습이 ..
그의 눈물 2011. 5. 1 홍은 결혼식 그날도 정확한 타이밍에 눈물이 핑.. 돌았다. 신랑신부가 나란히 서 부모님 앞으로 간다. 신랑이 무릎을 꿇어 큰 절을 올리는 새, 신부는 덩그러니 서 부모님의 눈길을 애써 외면한다. 몇 해 전 봄날 시종일관 웃음진 신부였던 난, 신부가 된 친구의 마음이 들리는 것 같다. 신부가 환히 웃는 건.. 울지 않으리란 결연한 의지다. 함박 웃음꽃이 핀 홍은. 그런 홍은을 품에 안은 아버진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훔치셨다. 결혼은 행복의 시작같지만 아쉬움과도 닮았다. 홍은아 축하해. 예쁘게 사는 걸로 효도하자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