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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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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 이들이 눈 앞을 지난 찰나의 순간을 기억한다. 현실감이 무너졌던 기억. 무심히 횡단보도 앞에서 대기하는데 쏟아지는 느슨한 햇살 아래로 지나는 사람들 이라기 보다는 압도적인 풍경. 거짓말이라고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빛의 속도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이 한 장의 사진은’ 나의 뉴욕’이 되었다. . 다양한 삶의 방식이 묻어나는 도시는 많지만 뉴욕은 좀 달랐다. 과감하고 지유분망하면서 때론 노골적이었다. 타임스퀘어와 가까워 질수록 ‘너의 돈을 탐하겠다’는 뉴욕의 의지는 강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앞서가는 시도와 그들만의 조용한 취향이, 오래되고 낡아 우아한 것들이 공존하는 모습에 매 순간 영감을 받았다. 걷고 또 걸어도 지치지 않았다. 보고 또 보느라 매 끼니도 걸렀다. 뉴욕에서의 열흘..
지워진 런던 .그리고 사랑하는 런던의 익숙한 풍경들
한라산의 감동 '겨울왕국'을 보았다 ​ ​ ​ ​ ​ ​ ​ ​ ​ ​ 2016년 1월 15일. Real ‘겨울왕국’을 보았다. 설경을 기대했지만 기대 이상일 줄이야. 한라산 윗세오름까지는 두 번이 전부인데 평소 산과 친하지 않은 내 눈에도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해 더 자주 오겠다고 다짐하게 되더라. 연례 행사가 되면 좋겠고 아이들이 좀 더 크면 함께 자주 걷고 싶다. 문득 산을 잘 모르는 주제지만, 산을 타는 일이란 기꺼이 고통을 견디기 위함이 아닐까, 고통에 익숙해 지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을 좋아하기란 스스로 낮추어 ‘겸손’하지 않으면 어렵겠다고. 오르막을 걷다가 걷다가 보면 한없이 작고 나약한 나와 마주하게 되는데 결국 날 이끌고 가는 건 정신과 의지이지 않나. 초라한 네 모습을 보고 이 고통을 감내하라는 산의..
뉴욕 여행 뉴요커처럼 살아보기 뉴욕의 그린마켓 뉴욕 도심 한복판 유니언스퀘어에는 매주 수요일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마다 '그린마켓'이라고 불리는 장터가 열린다. 지역 주민이 직접 재배하거나 만든 채소와 과일, 잼과 치즈 등이 가득 차고 '슬로우라이프'를 지향하는 뉴요커들이 하나 둘 모여 활기가 돋는 곳이다. 수제 잼과 직접 재배한 과일들이 완전한 내 취향이다. 그곳 중앙에 오도카니 섰다가 지천으로 널린 싱그러움에 취해 딱 1년만 살고 싶다며 마음으로 엉엉 울었다. 당장 화분 몇 놈을 품에 안고 근처 내가 사는 작은 원룸에 가져다 놓을 상상을 수도 없이 했다. 그렇게 짧은 뉴욕 여행을 마치고 불만 투성의 일상으로 복귀해 넋 놓고 살다가 요즘에 다시 작은 책 한권 만들어 보겠다며 그 때 사진을 펼쳐 놓고 산다. 그리고 새로운 각오를 하나 ..
제주 안개 ​ 옅은 바람에 실려 슬몃 닿은 제주에서 어떤 오름을 삼키는 안개를 보았다. 결국 나조차 지워졌을 시간.
소박한 바람 2014. 1. 2. 한라산 윗세오름 제주 한라산 등반으로 2014년을 시작했다. 두 아들의 엄마, 남편의 아내의 자리에서 잠시 떠난 쉼. 언제나처럼 찰나의 휴식 속의 내 모습이 가장 나 답더라. 언제쯤 일상 속의 나를 '나'로서 완전히 인정할 수 있을까. 산을 오를 때의 기분이 그토록 상쾌할 지 예상 못했다. 걷고 또 걷는 일. 몸을 최우선에 두고 걸음의 보폭과 훕후후 호흡을 유지하도록 머리가 지지해줘야만 가능한 일. 가슴에 꾹꾹 눌러 박은 '의지‘를 불태우는 일. 멋진 경험이었다. 의지의 불씨만 살려 놓는다면 자주 오르내릴 것이다. 지금이 7월이든 11월이든 상관없을 만큼 이번 새해에게 무심하다. 메마른 탓일까. 긍정의 기운인지 그 반대인지 복잡한 감정으로 시작하는 올해는 어떨지. 딱히 어떤 변화는 ..
정뜨르비행장 2014. 1. 1 제주 정뜨르비행장 하루에도 수백의 시조새들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바닥을 할퀴며 차오르고 찢어지는 굉음으로 바닥을 짓누르며 내려앉는다 차오르고 내려앉을 때마다 뼈 무너지는 소리 들린다 빠직 빠직 빠지지직 빠직 빠직 빠지지직 시커먼 아스팔트 활주로 그 밑바닥 반백년 전 까닭도 모르게 생매장되면서 한번 죽고 땅이 파헤쳐지면서 이래저래 헤갈라져 두번 죽고 활주로가 뒤덮이면서 숨통 막혀 세번 죽고 그 위를 공룡의 시조새가 발톱으로 할퀴고 지날 때마다 다시 죽고 육중한 몸뚱어리로 짓이길 때마다 다시 죽고 그때마다 산산이 부서지는 뼈소리 들린다 빠직 빠직 빠지지직 빠직 빠직 빠지지직 정뜨르 비행장이 국제공항으로 변하고 하루에도 수만의 인파가 시조새를 타고 내리는 지금 '저 시커면 활주로 밑에 수백의..
가능성 2013. 10. 갈매기 여럿이 가슴 밑바닥 꽁꽁 숨겨 논 가능성을 낚아채 바다에 던진다. 가을, 지긋이 바라본 동해 바다의 풍경을 그리 읽으니 슬며시 눈물이 고인다. 남은 건 이룰지 이룰 수 없을지 알길 없는 가능성을 붙들고 희망하는 일 뿐인 걸. 요즘 난 가능성의 문을 조금씩 천천히 닫고 있다. 예기치 않게 들어선 우회로를 거쳐 결국 걷고 싶은 그 길을 만나게 될까. 모든 길은 통한다는 무심한 위로에 기대를 걸어 봐도 좋을까. 시들어 버리기 전에 한 번 더 향기 낼 수 있을까. 하나씩 접은 마음 틈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내민 바람의 소리에 귀 기울여도 괜찮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