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애플알러지

(466)
가을에 떠난 부산, 모티 사장님 추천한 영도 list. 매년 이맘때 부산으로 향하던 시절이 있었다. 영화를 보는 게 일이던 날들. 고레에다 히로카즈 신작을 누구보다 먼저 볼 수 있는 게 가장 신났다. 다르덴 형제와 켄로치의 영화 속을 걸었다. 그들 영화로 먼 세계의 낯선 삶을 겪으면 가슴이 저리고 아팠다. 일하는 영화인으로는 애송이였지만 영화인들 가슴의 꿈을 응원하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내게 특별한 ‘부산의 가을’을 다시 찾았다. 밤기차에서 내려 역 앞의 차이나타운을 돌다가 신발원 앞에 늘어선 사람들과 함께 줄을 서려다 말았다. 위스키 한잔을 하려고 구글앱에 검색하니 ‘여기다’ 싶은, 모티 mottie 를 발견했다. 부산역 근처 내가 선 곳에서 700m 라고 해서 호기롭게 걷다가 가파른 골목에게 놀랐다. 나는 부산이 이토록 가파른 도시라는 걸 처음 안다. 이..
슬아가 슬아 되다, 끝내주는 인생 일간 이슬아를 구독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슬아 인스타그램에서 행보를 지켜보던 시절이었다. 어? 얘 뭐야? 하면서 들여다보게 됐었다. 키치 한 무드로 눈길을 사로잡았던 그였다. 촌스러워서 획기적이었다. 난 획기적인 걸 좋아하니까. 획기적 (劃期的) 어떤 과정이나 분야에서 전혀 새로운 시기를 열어 놓을 만큼 뚜렷이 구분되는 것. 슬아를 한 해 두 해 지켜보다가 특유의 성적 매력을 흘리는 묘한 끼가 읽혀서 살짝 피곤했다. 매일의 글을 보내고 때로 정중하게 마감이 늦어졌음을 알리거나 그 밖의 양해를 구하는 글들이 똑 부러지고 예의를 다한 태도였지만 마음 쓰지 말아 달라는 당부 같아서 마음 두길 멈추었다. 다시 한 해 두 해가 흘렀다. 이젠 내 주변에 슬아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최근 그의 경향신문 칼럼을 읽고 ..
바닷마을 다이어리, 여름 제주 바닷마을 다이어리, 라고 이름 붙이고 기다린 내내 설렜던 여름 여행. 집 앞바다가 아들들과 놀아주고 파도쳐주고 윤슬 반짝여준. 여행 내내 음식 내어주고 방문 열어준 법환동 섬마을 친구들의 바다만큼 큰 환대 속에서 오순도순 연결돼 살가운 챙김을 받은. 매일 어둠으로 소멸하는 밤 앞에서 ‘다시’ 오늘이야, 시작이야, 정신을 똑띠 차리고 맞이한 아침 대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흐르는 시간이 유연한 춤처럼 리듬이고 숨이었던. 이 경험은 오랜 기억이 될 거라고 알아챘다. 처음으로 감당할 수 없는 걸 감당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 너머의 무엇이든 흐르렴 하는 긍정의 마음이었다. 섬의 친구와 바다 바람 파도 비 그리고 아들의 닮고 싶은 동심이 용기가 되었다.
엄마의 손편지 #1. 기대라는 사랑 꿈을 펼쳐라 일과 사랑을 잘 꾸려라 건강을 보살펴라 능력있는 여성으로 살아가라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라 다 잘될거야 . 엄마의 손편지를 받고 까매졌다. 기대와 바람의 말들의 나열 사랑인지 알면서도 내 마음에 들여 놓을 자리가 없다. 기대의 말을 사랑으로 듣고 자랐다. 응원가 같은 긍정의 말들이지만 기대는 불충분한 상태를 거울로 비춘다는 걸 이미 알게 된, 마흔의 나다. 기대의 말로 사랑을 받은 사람은 자기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기까지 더디다. 배운대로 기대의 말로 사랑을 하느라 늘 불충분한 것에게 먹이를 줬다. 지금이 나의 꿈이고 이미 이뤘고 이대로 괜찮고 그대로 충분하다는 ... 사랑 ... 이 글은 엄마를 원망하는 글이 아니다. 나란 아이가 자라 이 부족한 사랑을 사는 구나 발견한 결정적 순간의 ..
고잉홈 프로젝트, 손열음의 춤과 빛 손열음은 하이힐을 신고 무대 계단을 총총 뛰듯 걷는다. 건강한 사람의 발걸음. 온몸으로 들썩이는 때로 후둑 물 흐르듯 손 끝까지 힘을 놓고 떨어트린다. 그의 연주는 춤이다. 아름답다. 건강한 사람의 빛. 나는 여기 분들이 숨까지 맞추는 정성을 듣는다. 현과 현이 공기 안에서 부딪히고 울리고 번지는 섬세한 감각을 알아챈다. 오케스트라 연주를 볼 때면 늘 저 모습이 우리 팀이고 내 리더십이라면 ... 우와 우와 원한다. 때로 눈을 감고 한분 한분의 몰입이 만드는 눈이 질끈 감기는 쨍한 에너지 너머로 훌쩍 던져지는 상상을 한다. 그 기분이 호화스럽다. 2년째 고잉홈 프로젝트. 낯익은 연주자들을 꾹꾹 눈에 담고 반가운 마음 인사를 보낸다. '그대로'라는 키워드에 '감사'라는 의미를 붙인다.
보통날의 여행 #1. 제주도 서귀포 북카페와 맛집과 숙소, '알맞은 시간'에 '괜찮은 부엌'에서 내 생의 가장 부자인 나날이다. 시간을 이끄는 자의 위엄을 산다. 회사 생활을 정리하고 내 브랜드를 런칭하고 최고 중에 최고로 꼽는 건 바로 이 ‘시간’이다. 돈의 속성 김승호 작가도 자기 사업을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스스로 시간을 통제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어쩌면 유일한 직업일 수 있다고 얘기했다. 그 곳이 어디든,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니 평일, 보통날에 훌쩍 제주로 날았다. 티겟이 저렴했고 런칭한 하이그루 브랜드의 첫 프로모션의 결과지를 받아 안았으니 웅얼거리는 마음에게 귀 기울이고 싶었고 기발한 뇌는 무용한 시간 안에서 문득, 출현하는 법이니까. 무엇보다 딱히 제주까지 갈 필요가 없었으나 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이유는 너무나 결정적이었다. 생에 첫 예산을 설정하고 여행을 떠났다. 놀랍지 ..
꼬마의 하루, 나의 슬픔과 행복 잠에서 덜 깬 꼬물거리는 꼬마를 가만히 카메라에 담은 아침. 이 고요와 평화의 아침이 허락된 데에 감사와 상실을 가지는 날들이 이어지는구나. "꼭 와야돼! 꼭 와야 돼!" 수차례 약속을 받아내는 너. 이런 날마다 엄마의 부재로 부족했을 마음들이 합창하듯 항의하듯 소리치는 것 같다. 꼬마의 조급하고 간절한 약속의 말들 앞에서 헝클어졌을 네 지난 마음을 읽는다. 내가 제일 잘하는, 상쾌한 페르소나를 유지하면서 쿨하게 대답해 주기. 꼭꼭! 갈 거야! 걱정 마! (사랑해, 사랑해.) 행사 시작하기 2분 전. 역시 우리의 약속 시간보다 20분이나 늦었다. 아니나 다를까, 고개가 빠지도록 날 찾는 꼬마에게 뒷자리 멀리서 두 팔을 크게 휘저으면서 인사를 보낸다. 그제야 안심한 듯, 세상 전부의 사랑을 준 훌륭한 엄마..
23 여름 새벽의 기록 정말 오랜만에 좋아하는 새벽에 눈이 떠졌다. am 4: 30. 취침 시간이 뒤로 밀리면서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허덕여지는 게 아팠는데 오늘은 눈을 뜬 순간부터 좋구나. 알람 소리로 아침을 맞는 게 싫어하는 일 중에 하나라는 걸, 어제, 1시간 가까이 10분 간격으로 울리는 알람을 아예 지울 때까지의 소란과 피로에 대해 떠올린다. 싫어하는 걸 잘 아는 사람, 이다. 싫은 것을 다른 의미로 되새김질해야 하구나, 생각한다. 무엇이 싫어서 무엇을 바란, “나는 000 하고 싶다, 나는 000 바란다” 같은 기도의 마음을 외고 적고 살핀지 긴 세월이 흘렀다. 숭고한 바람이 나쁠리 없다 믿고 산 세월인데 이제야 불충분한 갈망들이 무의식이 되도록 노력한 셈이지 않나, 묻게 된다. "이대로 충분하고 매 순간이 성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