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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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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우기 쉬운 자식이 있을까마는 ... ​ 키우기 쉬운 자식이 있을까마는 아들 너는 어렵다. 아침부터 눈물 훌쩍이며 전화가 왔다. 엄마.. 흑흑 엄마... 흑흑 응 한젤아 왜? 말해봐 왜? 무슨일 있어? 만원 지하철 안에서 최대한 상냥하고 부드럽게 대꾸했지만 대답을 들을 순 없었다. 계속 흐느끼기만 하길래 "한젤아 엄마가 일찍 갈게, 알았지?" 하고 끊고는 다시 출근길 긴장 모드로 전환했지만 당연히 마음은 편치 않았다. 이른 출근 중이니 30분이라도 이른 퇴근을 제안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단축 근무 중이라 눈치가 보이겠지만, 오늘은 그렇게 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어젯밤 일이 걸렸다. 아들 마음에 여진이 남았나 싶어 걱정이었다. 어젯밤 한젤의 폭풍 오열을 보았다. 발단은 준비물을 못 챙긴 한젤을 여자 아이 둘이 수업 과정에서 따돌린 모양이었..
집 짓는 일 #1 건축가와 건축주 instagram @australian architecture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이따 뵐게요. ... 고맙습니다. ... 벌써 너무 많은 인사말이 씹혔다. 이런 일방적인 관계는 짝사랑도 드믄 내게 첫 경험이나 마찬가지라서 어떻게 다뤄야 할지 당황스럽다. 회사 동료라거나 거래처 누구라거나 옆집 아줌마라면 애써 무시하고 적당히 거리 두며 살다보면 잊혀질 터. 억 단위의 프로젝트, 그 중 반은 빚인 가슴이 답답한 일생 일대의 결정에 그 누구보다 중요한 키를 쥔 사람. 남은 인생의 흥망을 손에 쥔 자, 나의 건축가 얘기다. 바보같은 솔 메이트가 되리란 꿈도 거품이 되었다. 나의 가장 큰 문제가 '기대감' 이란 걸 잘 알지만, 기대가 이만큼 흩어져 파편으로 사라진 경우는.... 이 얼마나 불운인가...
세 번째 와인데이 ​​​ 시칠리아 레드와인 라무리 lamuri 네로 다볼라 품종 태양이 좋은 시칠리아산 와인은 아마 처음 맛본다. 톡 쏘는 과일향은 십여 분 지나 차분해진다. 부드럽고 감미롭다. 과일향이 조금 뭉개져 은근하게 퍼진 느낌을 좋아한다. 나의 취향의 와인을 찾는 중인데 오늘 어렴풋이 알았다. 체리와 장난처럼 시작한 와인데이가 벌써 세 번째다. 둘만을 바라보며 서로를 말해주거나 들어주는 시간인데 제법 힐링이 된다. 오늘은 최근 읽은 책을 서로 나눠 얘기했는데 난 김민철을 체리는 리베카 솔릿을 가져왔다. 서로 다른 느낌을 나누고 취하는 시간이라 영감이 가득하다. 내가 닮고 싶은, 자극의 친구에게 듣는 사고 방식부터 시선의 얘기들에 공감하다가 또 반기를 들다가 하면서 시간이 훌쩍 깊은 밤이 됐다. 다른 감동은 차치하..
4년 전의 오류들 한젤이의 다섯 살을 꺼내 보는 일은 다섯 살 루다를 바라보다 시작됐다. 매일 빛나는 눈동자로 내 곁을 맴도는 루다를 물고 빠는 요즘. 하루가 다르게 길어지는 손가락 마디를 확인할 때마다 아쉬운 마음에 “루다야 천천히 커야 돼, 알았지?” 라고 당부하는 요즘. 별안간 한젤이의 다섯 살이 궁금했다. 루다와 알콩달콩 애정신을 펼칠 때마다 어디선가 집중해 책을 읽거나 리코더를 불고 있는 한젤이는 기특하게 자라 이제 10살이 된다. 기특한 한젤이. '기특'에 갇혀 지내는 건 아닐까, 조용히 한젤이 곁으로 가 동생에게 하듯 꼬옥 안아주었다. 입꼬리가 귀에 걸려 천진하게 웃는다. '기특하다'는 말은 동생처럼 굴지 않는다는 말과 결이 같다. 어른스럽게, 형답게 행동해야 듣는 이 말은 ‘어른’을 위한 칭찬이다. 어린이는..
정신의 지중해 "그러니 중요한 것은 일상에 매몰되지 않는 것, 의식의 끈을 놓지 않는 것, 항상 깨어 있는 것, 내가 나의 주인이 되는 것, 부단한 성실성으로 순간순간에 임하는 것, 내일을 기대하지 않는 것, 오직 지금만을 살아가는 것, 오직 이곳만을 살아가는 것, 쉬이 좌절하지 않는 것, 희망을 가지지 않는 것, 피할 수 없다면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 일상에서 도피하지 않는 것, 일상을 살아가는 것. " 모든 요일의 기록, 김민철 지음 동의하고 또 동의한다. 나도 (예전의) 그녀처럼, 매일 회사에 출근하면서 매일 회사에 가기 싫다. 매일 출근하는 아침을 믿을 수 없어 하며 출근하면, 막상 아무렇지 않게 일하고 심지어 가끔 어떤 날은 열심히 한다. 그녀가 김화영의 에 이어 알베르 카뮈로 달음박질치면서..
작고 친밀한 공동체 ​ 6월이면 완공이다. 집짓기. 작고 친밀한 공동체, 마을 살이를 위한 결정이다. 돈보다 사람이 좋은 나의 빛나는 결정이 될 지는 미지수이지만, 기다리는 동안의 셀렘을 무시하거나 낮출 필요는 없겠지. 건축가와 함께 세 곳의 시공사 미팅을 마치고 대략 마음의 결정을 내린 오늘 밤. 우리 집의 모습을 좀 더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하고 싶었다. 애정하다가 소원해진 나의 블로그에 부러 찾아와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한다. 가난할 것이 두렵다. 가난해도 괜찮을 삶이라면 좋겠다. 이런 꿈을 꾸는 내가 어리석은 것이 아니길, 잘 사는 일로, 함께 웃고 또 울며 위로하고 기대어 지내고 싶다. 나는 사진을 찍고 책을 만들거나, 당신을 바라보는 데에 나의 대부분의 시간을 기꺼이 나누고 싶다. 오늘만 살 수 ..
굿 바이 ‘브란젤리나’ 결국 이렇게 됐다. 둘의 결별을 예상한 나조차 적지 않은 충격이다. 지인의 이별처럼 가깝게 아프다. 아마 이별의 경험이 떠올라서겠지. 송곳처럼 뾰족한 게 파고드는 그 아픔을 아직 기억하니까.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수 년 동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커플로 이름을 올린 그들의 선택이다. 아마 앞으로 수 년 간 더러운 스캔들로 시끄러울 거란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 그들이 내린 결정이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이 결정이 얼마나 ‘진심’인지 알 수 있다. 안젤리나 졸리는 오래 관심을 둔 배우다. 방황과 스캔들로 얼룩진 그녀의 젊은 나날이 전복되는 과정을 (팬으로) 지켜봤다. 자살시도, 약물 중독과 같은 이야기들이 나올 만큼, 그녀 또한 ‘미친 시절’이라고 인정한 자신의 어두운 과거 이후 천천히 다른 삶을, 옳..
취향에 대하여 ​​​​ 취향은 얼마나 중요한가. 취향은 결국 라이프스타일, 주변의 사람들, 노년의 표정과 미소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때문에라도 취향을 알아가는 과정 그리고 자세하게 가다듬는 과정은 꼭 필요하다. 그러니까 대충 먹어 대충 입어 대충 해 라기보다 이왕이면 취향껏 골라 먹고 챙겨 입고 잘 하는 게 나를 더 나다운, 내 마음에 드는 나로 완성시킬 거다. 예술이 거창한 게 아니라 지금 우리집 내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거라고 말한 스콧 니어링이나 나이 들수록 태도가 그 사람을 결정한다고 말한 최화정 모두 그들 개인의 취향이 견고하게 자리잡은 경우라고 보인다. (두 얘기 모두 듣자마자 각인돼 잊히지 않는다.) 오래 길들인(공들인) 취향은 때론 어렵고 힘든 상황, 경험 혹은 시기를 극복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