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알러지 (477) 썸네일형 리스트형 11년 전 2001년 10월 11년 전, 런던에서 몇 달을 머물며 민박집에서 알르바이트를 했었다. 돌아보면 인생의 첫 경험들이 즐비했던 소중한 시간들. 당시엔 30인분 밥물 맞추기 같은 고난이도의 미션들에 스트레스도 꽤나 받았지만, 언제나 막내 동생 돌보듯 보살펴주고 달고 다녀준 주인장 오빠들 덕분에 종종 추억되는 아련한 시절이다. 사진 속 이 날은, 아마도 그동안 벌어둔 여비로 혈혈단신 유럽 여행을 떠나기만을 남겨둔, 런던에서의 마지막 밤이지 싶다. 고마웠다고 아쉽다고 훌쩍이다 취한. 배움도 사랑도 여행길도 머물 곳도 모두 뜻에 따라 이룰 수 있다며 미소짓는 풋풋한 저 여인이 과연 '나'인가. 삶의 많은 것이 결정되고 예정된, 짧은 떠남도 어려워진 현재의 내가 그나마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그는 말했다. .. 시작의 날 2012 3 5 한젤이가 유치원에 입학한다. 우리 때와 비교해 꽤 이르게 시작하는 공동체 생활이라 내 맘도 편치 않은데... 아니나 다를까 유치원 첫 등원 날이 되자 내내 의연했던 한젤에게도 심난한 기색이 엿보인다. 모른 척 하고 등 떠밀어 보낼까 하다가 "한젤이가 오늘 큰 유치원 처음 가는 날이라 두근두근 떨리는구나." 했더니 금세 울 것 같은 얼굴이 돼 품안을 파고 들어온다. “엄마도 처음으로 뭘 할 땐 긴장되고 떨려. 하지만 시작하면 다음번은 쉬워지거든. 해보는 거야. 잘 할 수 있을 거야." 위로가 전해질까 반신반의하며 건넨 한마디인데 다행히 아이 얼굴이 환해진다. 되레 비가 내려 촉촉해진 땅을 얼른 밟아보고 싶다며 문 밖을 나서길 재촉한다. 함께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는 동네 형, 누나도 있으니 든든한지 밖에서도.. 두번째 사랑 두 번째 사랑이길 바랐던 하정우는 넘 대세남이 되어 매력이 반감됐지만, 역시 좋은 배우란 느낌이다. 느지막이 찾아 본 (김진아 감독)은 욕망을 좇은 여성이 결국 파멸에 이르는 여느 불륜 영화와는 다르게 평화로운 해피엔딩이 인상적이다. 아이를 지독히(목숨을 걸만큼) 가지고 싶어 하는 ‘부부'의 설정이 진부해 보이기도 하지만, 여 주인공 소피가 이룬 두 갈래의 사랑이 모두 납득할만하단 점에선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에서 아들의 친구와 사랑에 빠진 엠마의 마지막 결심과 결을 같이 해, 앞선 여성영화의 계보를 잇는 작품으로도 보인다. 다만, 불륜의 행복한 결말이란 게 어쩜 이리도 영화 같을까 싶어 조금은 헛헛해지고 말았다. 부끄럽구요 일도 놓고 사랑도 흩어진 기분. 거듭되는 하루들의 의미가 궁금하다. 아이들은 곧 제 삶을 걸어갈 것이니 집착은 말자고 스스로 몇 번씩 각오할 뿐인걸. 그는 매일같이 열중하는 일에 대한 보답을 언젠간 받게 될텐데. 그럼 난, 난 남아 무엇이 될까. 그저 취미를 즐기다 사람을 사귀고 이룬 가정 안에서 행복한 척 웃으며... 빌어먹을 빈말에 위안을 얻으며 살게 될까. 언젠가는 진심을 토해낸 결과물 그 무엇을 세상에 꺼내놓을 수 있을까. 나처럼 약점이 많은 인간이 과연 그 어마어마한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묻자. 자신은 있냐고. 절대로 지금의 내 모습에서 꿈꾸는 미래의 내 모습을 기대할 수가 없다. 너무나 먼 길. 어쩌면 얼토당토 않은 길. 아룬 것도 가진 것도 집념으로 노력하는 것도 그 어떤 것도 .. 자전거 탄 소년 다르덴, 그들의 영화는 적어도 내겐 영화가 아니었다.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하기엔 사실과 닮았고, 그늘진 삶을 애써 살아내는 주인공의 모습은 세상의 부조리함을 바로 보는 창이 되곤 했다. 그들이 고집스럽게 사용하지 않은 영화 속 음악이 에서 들려올 때, 베토벤의 피아노 연주가 희망의 다른 말로 전해져 감상을 방해할 때 아, 그들도 변했구나 싶어 아쉬웠다. 그럼에도 주인공 소년 '시릴'이 보이는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향한 무한한 이해와 변명은, 시릴의 위탁모 '사만다'가 전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내리 사랑은 영화의 중심을 이뤄 가슴을 친다. 비난하지 않는 것은 믿음, 신의, 어쩌면 사랑과 같은 말이 아닐까. 어떤 깨달음의 울림이 깊다. 어쩌면, 많은 평자들이 얘기한대로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이번 작품을.. 돌고래 세마리 심난한 채 잠들었는데 아름다운 꿈을 꿨다. 허름한 숙소 화장실로 돌고래 세 마리가 찾아왔다. 반짝이는 청색의, 한없이 맨드라운 얼굴을 쓰다듬으며 그들과 물 위를 함께 날았다. 모두 몸집이 작은 아기 돌고래들이었고 나에게 더 없이 살가웠다. 그 중 한 마리가 우리말로 “바다에 잠시 다녀올게.” 했다. 셋이 줄지어 떠난 뒤 바라본 창밖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파리의 밤이었다. 이렇게 살아지는 건가보다 한다. 요즘은 특별한 걱정 없이 매일 밤 짧게나마 나에게 쏟을 시간이 아니 정력이 있기만을 바랄 뿐 다른 건 없다. 다만 시간이 어서 흘러 내일이 오고 또 다음날이 돼 나이를 먹고 중년이 되어 홀연히 훌쩍 비밀처럼 떠나도 탈 날 것이 없는 미래의 어떤 날을 그린다. 간혹 심난한 것은 마주치는 지금의 내 모습 때.. 입춘 지나 진짜 겨울 2012. 2. 입춘이 지나 진짜 겨울을 보았다. 춘천사의 꽁꽁 언 계곡물과 녹을 채비도 마다하고 만끽하라는 듯 지천에 널린 하얀 눈을 밟았다. 춘천 시내에서는 봄 향이 코끝에 걸리더니, 그 산속은 같은 하루란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찬바람이 매서웠다. 태어나 이토록 많은 눈밭을 걸어본 적 없는 아기가 제일 신나 껑충껑충 뛰놀았고, 그 뒤를 종종 걸음으로 쫓은 난 추웠지만 아름다운 겨울의 풍경에 빠져들었다. 돌아오는 차 안이었던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 가난한 내가 가진 것들을 나열한 메모가 보인다. 선뜻, 주말 산책을 지휘한 착한 남편과 쑥쑥 자라주는 감각적인 아들. 드디어 익숙해진 안락한 나의 집과 언제든 따뜻한 물이 흐르는 고마운 싱크대. 건강하신 양가 부모님과 아낌없이 사랑 주는 나.. 탐나노라, 나탈리와 애쉬튼의 러브스토리 이 영화가 보고 싶었던 이유는 순전히 두 배우 때문이다. 좋아하는 장르는 아니래도 나탈리 포트만과 애쉬튼 커처의 19금 로맨틱코미디 영화라면 후회하진 않을 것 같았다. 보고난 지금, 후회는 없다. 더해 영화의 흥행 부진은 ‘친구와 연인사이’라는 촌스런 한국말 제목 때문이란 생각에도 변함이 없다. 시간차를 두고 이뤄지는 우연한 두 번의 마주침. 이어지는 돌발적인 모닝 섹스 후 짬 시간마다 즐거운 섹스를 즐기는 것에 합의한 엠마와 아담. 이들은 애정의 감정을 배제하기 위해 적당한 규칙을 정해 놓긴 하지만, 조건 없이 이유 없이 자유롭게(No Strings Attached) 친구를 가장한 섹스 파트너로서의 관계를 잇는다. 결국 어찌할 수 없이 인정하게 될 진한 사랑이 될 거면서. 꽤 도발적인 줄거리에 비해 실.. 이전 1 ··· 26 27 28 29 30 31 32 ··· 6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