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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알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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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한달살기, 한젤이와의 추억 친절한 제주도, 여전한 협재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한라 도서관은 매 수요일에 휴관이다. 상심한 한젤이가 징징 거리는데, 지나던 한 분이 근처 설문대어린이도서관이 있단 정보를 건네주신다. 당장 목적지로 설정, navi의 안내에 따라 그러나 헤매면서, 겨우 찾아 도착했다. 알뜰한 손길이 엿보이는 아담한 공간에 들어서자 아이가 신이 나, 역시나 공룡 이야기 그림책을 찾는다. 기대도 안했는데 간단한 회원 가입 절차를 마치면 도서 대여도 가능하단다. 잠시 머무는 여행자에게도 조건 없이 읽고 돌려달라며 책을 빌려주는 친절한 제주도. 고맙고 또 고맙다. 햇볕이 너무 좋아 또 다시 바다로 향했다. 애월 쪽에 숙소가 있어 가까운 협재해수욕장엔 연속 이틀째 방문이다. 하늘에 태양빛이 가득해도 아직은 제주 바람이 제법 쌀..
제주, 다섯살 꼬마와 잠시 머물기로 제주가는 날. 드디어 출발 좀처럼 흥이 나지 않았다. 잊지 말기로 한 것들을 빠트리고 온 것에 자책했다. 예를 들면 안경... 같은 아주 중요한. 챙겼으면 좋았을 걸 하는 것도 하나 둘 떠올리니 마음이 가라앉았다. 예를 들어 고무장갑 같은. 마음만큼 몸도 천근만근이다. 태동이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아 무심했던 손길로 토닥토닥 부른 배를 만졌다. 뱃속 나에게도 신경 좀 써달라는 나름의 신호일까. 하루 먼저 도착한 광주에서 장흥 노력항까지 가는 길도 순탄치 않았다. 말썽 피우기로 유명한 올레navi 덕분에 한바탕 길을 헤매고 겨우 도착했다. 다행히 다섯 살 한젤군이 지루했을 시간을 의젓하게 참아주었다. 노력항에서 출항한 오렌지호는 좌석도 화장실도 생각보다 편안하고 깔끔했다. 이만하면 뱃길 제주행은 추천코스다..
변함없다는 듯 오월이 왔다. 한없이 공허했던 마음에 기대가 차츰 차오른다. 퇴사 후 곧장 제주행을 계획했다. 어떤 조건도 따지지 않고 그저 해왔던 대로 요동치는 심장 소리를 존중한 결정이었다. 주위의 걱정 어린 시선 역시 모르는 바 아니지만 용기내고 싶었다. 예전의 나답게. 문득 엄습하는 두려움과 불안함을 극복하는 과제를 안고, 여전한 헛헛함은 메말라 죽어가는 식물과 말 섞으며 해체 중이다. 고요하게 사뿐사뿐 새 길을 걷고 싶다.
2012. 4. 여기 봄은 흐드러질 벚꽃이 봉오리로 대기 중인데 저기 봄은 흩뿌려진 벚꽃잎에 어지럽다 봄이 성큼 오더니 훌쩍 떠나려한다 기다린 마음 머쓱할 만큼
삼십대 삼십대 _ 심보선 나 다 자랐다, 삼십대, 청춘은 껌처럼 씹고 버렸다, 가끔 눈물이 흘렀으나 그것을 기적이라 믿지 않았다, 다만 깜짝 놀라 친구들에게 전화질이나 해댈 뿐, 뭐 하고 사니, 산책은 나의 종교, 하품은 나의 기도문, 귀의할 곳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 공원에 나가 사진도 찍고 김밥도 먹었다, 평화로웠으나, 삼십대, 평화가 그리 믿을 만한 것이겠나, 비행운에 할퀴운 하늘이 순식간에 아무는 것을 잔디밭에 누워 바라보았다, 내 속 어딘가에 고여 있는 하얀 피, 꿈속에, 니가 나타났다, 다음 날 꿈에도, 같은 자리에 니가 서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너랑 닮은 새였다(제발 날아가지 마), 삼십대, 다 자랐는데 왜 사나, 사랑은 여전히 오는가, 여전히 아픈가, 여전히 신열에 몸 들뜨나, 산책에 ..
한설희 老母 ‎ 한설희 [老母] , 류가헌 '어느새 늙고 병들고 겨울나무 마냥 앙상하고 쇠잔한' 모습이지만, 곱고 정갈하다. 백발의 머리칼은 아흔을 바라보는 노모의 자존심인양 강인해 뵌다. 카메라를 들고 선 딸과 노모 사이의 여백은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채워진 듯하다. 덕분에 클로즈업과 풀샷을 넘나든 작품들 어느 하나도 불편하지 않다. 아름답도록 유도되지 않았을 날 것의 다큐사진이, 참으로 아름답다. 류가헌에서 4월 8일까지 전시될 제 1회 온빛 사진상 수상작 한설희의 [老母]전은 공감을 부른다. 한없이 내리 사랑 주시는 우리내 엄마의 모습이, 어쩌면 미래 우리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기 때문이다. 지루하리만치 무엇을 어떻게 담을지 고민 중이지만 그저 찍고 싶다. 진심으로.
고요한 밤 2012. 3. 우리 함께. 특히 이번주는 강행군이었다. 오빠의 도움 없이 총 열 차례의 아침 저녁상을 차렸다. 햄김말이밥 같은 좀 찔리는 식단도 있지만, 미역국과 떡국은 내 입맛에도 일품, 대체로 잘 해냈다. 역시 그 누구의 도움 없이 입히고 씻기고 재우고 (유치원)보내고 받는 일도 온전히 스스로 해냈다. 다행히 꼴 안내고 새로운 유치원에 그럭저럭 적응해준 아이 덕분이다. 어제는 친구와 아옹다옹하다가 친구의 안쪽 허벅지를 물더라는 담임선생님의 우려 섞인 전화를 받았었다. 유난히 기분이 좋아 웃으며 하원하던 날이었는데 어떤 승리감을 맛 본걸까. 궁금하지만 만 4살이 채 안된 아이의 속을 아무리 엄마라도 알 길이 없다. 이렇게 2012년의 3월이 가고 있다. 금요일 밤. 드문 일인데, 아이가 초저녁에 잠이..
단 하룻밤의 사랑 Before Sunset, 2004 왈츠 한 곡 들어봐요. 그냥 문득 떠오른 노래 하룻밤의 사랑 노래. 그날 그댄 나만의 남자였죠. 꿈같은 사랑을 내게 줬죠. 하지만 이제 그댄 멀리 떠나갔네. 아득한 그대만의 섬으로. 그대에겐 하룻밤 추억이겠죠. 하지만 내겐 소중한 당신. 남들이 뭐라든 그 날의 사랑은 내 전부랍니다. 다시한번 돌아가고 싶어. 그날 밤의 연인이 되고 싶어. 어리석은 꿈일지라도. 내겐 너무 소중한 당신. 단 하룻밤의 사랑. 나의 제시. 비포 선셋은 미안하지만 내 영화 같아. 영화 속 제시와 하룻밤의 사랑을 나눈 바로 그 주인공이 된 것 같아. 추억으로 저물지 않는 지난 사랑이 머뭇머뭇. 몇 년이 흐른 뒤에 다시 본 이 영화, 처음보다 많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