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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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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지나 진짜 겨울 2012. 2. 입춘이 지나 진짜 겨울을 보았다. 춘천사의 꽁꽁 언 계곡물과 녹을 채비도 마다하고 만끽하라는 듯 지천에 널린 하얀 눈을 밟았다. 춘천 시내에서는 봄 향이 코끝에 걸리더니, 그 산속은 같은 하루란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찬바람이 매서웠다. 태어나 이토록 많은 눈밭을 걸어본 적 없는 아기가 제일 신나 껑충껑충 뛰놀았고, 그 뒤를 종종 걸음으로 쫓은 난 추웠지만 아름다운 겨울의 풍경에 빠져들었다. 돌아오는 차 안이었던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 가난한 내가 가진 것들을 나열한 메모가 보인다. 선뜻, 주말 산책을 지휘한 착한 남편과 쑥쑥 자라주는 감각적인 아들. 드디어 익숙해진 안락한 나의 집과 언제든 따뜻한 물이 흐르는 고마운 싱크대. 건강하신 양가 부모님과 아낌없이 사랑 주는 나..
Christmas 2011 2011. 12. 24. Mery Christmas 아무런 기다림도 설렘도 없는 이번 성탄 휴일에 오늘의 평온한 아침이 축복만 같다. 창밖이 온통 하얘 기분이 들뜬 탓도 있지만, 얼른 뛰어나가 풍경 사진에 집중하고 싶단 생각도 들지만, 소싯적 로맨틱한 날이라고 기뻐한 12. 24일의 아무렇지 않은 32살의 아침을 짧게나마 적고 싶어 졌다. 행복을 자주 언급하는 게 유치해 보인다는 건 알지만 이 기분은 정말이지 '행복'인 것 같다. 거실에 울리는 비틀즈의 헤이 주드와 우유 한 잔 밤식빵과 제법 쌀쌀한 거실 공기, 한 움큼 흰 눈모자를 뒤집어쓴 단지 내 자동차들, 저쪽 방에서 책을 읽는 당신까지 ...
다행이다 2011. 11 다행이다. 아무 일 없다는 듯 까무룩 잠들어주어 다행이다. 기운 없는 중에도 여전히 폴리 노래 신나게 따라 불러줘 다행이다. 아직은 꼭 안고 몇 걸음 걸을 수 있을 만큼 작아서 다행이다. 6일째 열이 났지만 고열은 피해 다행이다. 설사와 구토 증세가 금세 사라져 다행이다. 장염과 폐렴으로 번지진 않을 거라는 의사의 말, 다행이다. 행여 심각한 상태로 오래 머물며 아프진 않을까 걱정한 마음이, 이만하길 정말 다행이라고 혼자서 여러 차례 되뇌었다.
도로 여름 2011. TH-dong 사랑에 빠졌어... 누구와든. 가을은 사랑을 부르는. 낭만적인 계절이다. 첫사랑이 가을 무렵 찾아와서일까. 기억은 가물하지만, 가을 기운이 돈다하면 먼저 설레고 본다. 가을을 알리는 선선한 바람이 8월 끝자락에 살랑 살랑 불어 온 마음을 헤집더니 도로 여름이 온 모양이다. 특히 오늘은, 회색 구름이 하늘을 덮어 어둠이 급하게 깔렸다. 강훈 오빠의 첫 개인전 '눈에 밟히다' 오픈식이 천장이 뻥 뚫린 류가헌에서 곧, 시작될텐데...
여행한 후에 남겨진 것들 2011. 8. Los angeles 가리지 않고 먹었다. 특히 고기라면 바비큐에서 맥도날드까지 그 종류도 다양했다. 남은 음식물은 컵이고 접시고 빨대고 휴지고 구분 없이 함께 휴지통으로 훅 밀어 넣으면 그만이었다.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라더니 분리수거 제도만큼은 허술한 건지 선진국의 오만함인지 쓰고 버리는 일이 이상하리만치 쉬웠다. 텀블러도 챙겼지만 비행기 안에서 꺼내기는커녕 트렁크에 넣어두고 그걸로 끝이었다. 물이요 쥬스요 와인이요 주문하며 받아 쓴 종이컵만 열 개는 족히 넘을 것이다. 한번 쓰고 버려질 걸 뻔히 알면서도 잘 빠진 모양이 탐나 기어코 뜯어내 비누 샴푸 치약은 일회용을 즐겨 썼다. 어차피 이곳에선 어떻게 보이든 상관없단 생각이었지만, 실제로 아무도 날 주시하지 않아 마치 투명인간이 된 ..
모른체 London 고마워. 잊지마. 노력해. 널위해. 아파도. 미안해. 모른체. 위로해. 울지마. 너도. 나도.
Strange Fate 생각이 깊어지면 .. 투두둑 눈물을 떨굴지도 모르지. 궁금해 하지 않도록 하려고. 어떤 사정이 있는가본데 응원하려고. 무엇이든 네 행복을 가로막는 것 따위 없었으면 좋겠어.
그래도 극복해 삶의 기막힌 타이밍 중에 하나는 한 박자 늦는 깨달음이야. 그놈은 언제나 현재를 쫓는 과거에 머물러 지금의 꽁무니만 질질 쫓아 이대로라면, 눈 감는 그날도 아마, 아쿠, 이제야 알겠네 하게 될거야. 두 눈을 부릅뜬 끔찍한 모습으로 말이지. 사랑은 그래도 괜찮았잖아. 첫눈에 반해 이거, 사랑같아. 던져도 나름 로맨틱했고, 나 그만할래 하고 떠나면 곧 이별이 됐고, 다시 만나고 싶단 구애로 반나절 집 앞을 서성이면 그대로의 품속에 안길 수도 있었잖아. 사는게 사랑같음 얼마나 좋을까 말이야. 헌데, 사랑처럼 살았냐고 반문해보자구. 그렇게 목숨걸고 울고 웃어봤는지 그의 마음을 향해 돌진해 봤는지 그의 심장 박동을 느껴 보려고 귀조차 기울여 봤는지 말이야. 따뜻한 심장이 있다고 믿고 산거야 이제껏. 그거 하나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