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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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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Bye Bye 2010. 12. 24. 매일 보는 풍경에게 '메리 크리스마스' 숫자에 불과한건 나이 뿐 아니라 날짜도 마찬가지란 생각이다. 2010년이 끝나가는 달력을 보면 마음이 초조해지다가도 생이 끝나는 것도 아닌데 싶어 차분해지려한다. 그래도 괜스레 이맘때엔, 일 년 동안의 사진을, 본 영화를, 책을... 쇼핑 리스트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야 될 것만 같다. 가장 행복했던 치사했던 웃겼던 슬펐던 순간들도 꼽아보고 싶어진다. 올해의 인물인 그분께 짧은 메일으로나마 안부 인사도 건네고, 소홀했던 부모님도 챙겨드려야겠단 생각에 마음이 분주하다. 혼자서의 여행이 한 차례도 없었던가. 대신 대 가족을 이뤄 떠난 여행이 몇 차례 있었다. 나를 놓고 가족의 일원으로, 엄마로 며느리로 아내로... 자리한 경험들은 또 다른 나의 ..
사랑예감 Michael Ackeman 그 둘을 유심히 지켜봤다. 내 눈에 그건 마치 사랑, 어쩌면 사랑직전 같았는데 대략 이런 식이었다. 그녀는 그의 관심을 우정 정도라 여기고 기꺼이 즐기면서도, 혹시 모를 감정의 변화에 조심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가끔 경계선 안으로 들어오는 그의 손동작을 훽 뿌리치거나, 되레 옆 자리의 오래된 (남자)친구에게 더 살갑게 붙어 앉는 식으로 아직은 적당한 선을 긋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시종일관 촉촉한 눈빛으로 상대를 대했다. 그는, 감정의 그것이 사랑인지 아닌지 굳이 정의하지 않고 자유롭고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현하고 있었다. 입술에 묻은 음식 자국을 제 손으로 닦아 주는 제스처를 해내는가 하면, 뒤에서의 포옹도 서슴지 않았다. 물론 모두 취기가 적당히 물오른 늦은 밤의 상황이므로..
다른 여행 2003. London 언젠가 읽은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에서 비싼 돈 들여 해외여행을 하는 문화가 필요한지에 대해 고민해보자던 구절이 기억난다. 내게도 있을 여러 허영 중에 으뜸이 해외여행의 로망이기도 하니까 책을 읽던 당시 많은 공감을 했었다.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는 건 사실 발상의 전환이 가능하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큰돈이 드는 일도 아니다. 지난 한달 여 동안 재활용센터의 구석구석을 사진 찍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바로 여기가 삶 중에 방문한 하나의 여행지 일지도 모른다는. 새로운 사람을 사귀고, 새로운 공간과 친숙해 지는 것. 폐지를 모아 건네는 식으로 그 세상에 참여하게 되는 것. 이 여행으로 몰랐던 당신들의 생활 속에 내 생활이 묻고 번지고 하면서.. 좀 더 풍성해 진다는 건(..
이쯤에서 '진보집권플랜' 2010.11 햇살이 너무 좋아 가을을 예찬한게 엊그제인데, 어느새 겨울이 성큼 와 서있다. 높은 하늘의 따스함을 채 만끽하기도 전에 두꺼운 옷가지로 중무장하려니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후 불면 일어나는 하얀 입김이 반갑다. 사계절을 누리고 사는 '여기'는... 얼마나 행복한 곳인가. 하지만, '행복' 이란 말이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여기'는 분단국가란 현실 아래 힘없는 누구는 목숨을 잃었고, 남은 우리는 또 언제 떨어질지 모를 포탄을 두려워하며 긴장감에 떨고 있다. 피난행렬 운운하며 위태로움을 고조시키는 뉴스보다 연평도에 남은 반려동물들의 소식에 더 마음이 쓰이는 나도 이쯤에선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진보집권플랜'(조국/오연호)을 읽기 시작했다. 평화와 화해에 집중해야 될 때..
다시 태어난 기분 2010. 11. 강화도 우리 나이로는 서른하나가 된 해에 나. 뷰파인더로 세상을 보는 역할을 맡아 다시 태어났다. 그러고 보면, 나의 과거가 얼마나 '서른'을 갈망했었나. 이토록 찬란한 인연을 예감했다는 듯. 거울만 들여다볼 줄 알던 허울의 나로부터 벗어나 타인과 대화하기 시작해줘서. 흩어진 폐지를 제자리로 옮겨놓아 줘 고맙다. 아 먼저, 아끼던 보물을 선뜻 건넨 친구에게. 마냥 신나라한 내게 서운한 기색 하나 없이 네 영국의 생활을, 인도의 추억을 담아 준 D80을 선뜻 보내준 친구야 고맙다. 너는 나의 INVESTOR. 언제나 최고로 챙기마. 눈에 보이는 모든 것과의 관계 맺음이 곧 사진이란 걸 가만히 깨닫게 해준 선생님께. 사진과 함께여도 만약 당신이 없었다면 그건 앙꼬 없는 찐빵이지요. 당신에게..
준비 2010 여름쯤 이제부터는 한젤이와 온전히 함께 할 채비를 해야 한다. 늘어져있는 생활패턴도 긴장시켜놓아야 한다. 삼년이 다 되도록 정 붙이지 못하고 있는 부엌살림과도 지체 없이 친해져야 한다. 자유롭게 즐기던 나만의 저녁나절도 아이의 몫으로, 우리의 시간으로 남겨 둬야 한다. 기쁘면서도 한편 두려움이 검은 그림자처럼 드리워진다. 엄마라는 역할놀이가 고단하진 않을까 닥치지도 않은 걱정에 마음이 무겁다. 습관대로 판단하는 것은 생각이 아니라고 했다. 옳은 생각은 이 변화를 따뜻하게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된다. 새롭게 주어진 시간 안에 또 다른 나를 발견해보기로 한다. 나의 확장을 기대해 보기로 말이다. 잊지 못할 추억들이 켜켜이 쌓이는 행복의 나날들도 꿈꿔본다. 한젤이와 함께라면 어쩜 실현 가능한 꿈일지도..
자유의 본질 _ 리영희 2010. 9. 할머니 자기 자신에게 규율을 가하고, 그 규율이 자기 삶에 의미 있는 규율이기 때문에, 기꺼이 그것에 따름으로써 보다 승화된 삶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자유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남이 준 것으로 인해 자유의 영역이 확대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오히려 자기에게 제약과 규율을 가하는 속에서 그것이 보다 더 의미 있고 높은 정신성으로 자신을 승화시킨다는 진리를 터득했어요. '대화' 중에서
시선이 머문 자리 2011. 5. 사흘간 머문 그곳의 정원이 꼭 이국의 풍경 같아, 와! 여기 하와이 같다!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산책을 즐겼다. 다음날 아침 잔뜩 흐린 하늘에서 곧 비가 쏟아졌다. 무심히 가는 비를 즐기는데 먼발치서 두 아주머니가 잔디를 손보는 모습이 보였다. 비가 와 발코니에 선 나, 비가 와 잔디 위에 쪼그리고 앉은 그녀들. 각자의 자리에 선 우리... 이 어색하고 미안한 마음이라니...